엊그제까지 선진국 대열에 들어선 듯한 들뜬 자화자찬의 소리가 높더니 어느새 분위기가 달라져버렸다. 외국에서 막대한 달러를 빌리지 않으면 당장 금융이고 기업이고 결딴나게 된 상황에 이르러 이제 도리없이 어려운 시절을 견디지 않으면 안되는 모양이다.그러나 어떤 점에서 이것은 전화위복의 상황인지 모른다. 이렇게 말하는 것은 한국경제의 근본적 틀은 튼튼하므로 가령 IMF가 요구하는 구조조정은 오히려 경제적 체질강화에 기여할 것이고 그 결과 우리가 다시한번 경제적으로 도약하는 것은 시간문제라고 하는 정책당국이나 주요언론의 견해에 공감하기 때문이 아니다. 오히려 「구조조정」이라는 것이 결국 대규모 실업과 온갖 종류의 규제완화 조치를 의미한다는 것을 고려한다면 이 시점에서 나오는 어떠한 낙관론도 수많은 사회적 약자들이 겪을 당장의 고통 앞에서는 무의미한 논리라고 해야할 것이다. 더욱이 지금 멕시코의 예를 들어 사태를 낙관하는 전문가들이 있지만 이것은 그들의 입장이 기업과 자본 중심의 논리에 토대를 두고 있다는 것을 전형적으로 드러낸다. 페소화 폭락이후 IMF의 구제금융을 받아들여 위기를 넘긴 멕시코경제가 다시 경제적인 부흥을 이루게 되었다고 일면적으로 관찰하기 이전에 오늘날 멕시코가 극심한 빈부격차, 사회적 양극화로 심각하게 분열되어 있는 나라임을 기억해야 하는 것이다.
구조조정이 경제체질을 강화해줄 것이라는 관측도 근거없는 단견에 지나지 않을 수 있다. 그것은 기업의 입장에서 단기적인 이익증대와 좀더 자유로운 기업활동을 보장받는 일이 되겠지만 국민의 입장으로서는 오랜 세월 피나는 투쟁을 거쳐 획득한 일할 권리와 최소한의 인간다운 생활을 누릴 권리를 포함한 여러 민주적 기본권의 박탈을 의미하기가 쉬운 것이다.
그리고 지금까지 그래왔지만 구조조정이라는 명분으로 한층 더 본격화하는 이른바 규제완화 조치들은 지난 수십년간 황폐화할 대로 황폐화한 우리의 자연생태계에 돌이킬 수 없는 치명적 타격을 입힐 것은 불을 보듯 뻔한 일이다.
자연생태계와 사회적 약자들을 망가뜨리고 이루어지는 경제발전이 과연 무슨 의미가 있는가 하는 근원적인 물음을 떠나서도 그러한 경제발전이 물리적으로 도대체 언제까지 지속가능한 것인가 하는 물음은 누구도 회피할 수 없는 문제이다. 오늘날 세계화와 자유무역이라는 이데올로기는 세계전역에 걸쳐 지속불가능한 소비주의적 생활방식을 강요함으로써 수습하기 어려운 생태적 위기를 갈수록 심화시키고 있다. 이것은 우리가 다 아는 일이다.
생태적 위기는 우리 시대의 핵심적인 문제이다. 이것은 인간이 지구상에서 계속하여 살아갈 수 있느냐 없느냐 하는 문제이다. 따라서 우리가 영위하는 삶의 모든 국면에서 에콜로지의 문제보다 더 긴급하고 절실한 문제가 있다고 할 수는 없다. 경제가 어려워졌다고 해서 생태적 위기의 문제를 등한시하는 것보다 더 어리석은 일은 없을 것이다. 지금까지의 경제라는 것이 「쓰고 버리는」낭비적 생활의 제도화에 기초해왔고 따라서 그것은 본질적으로 반생태적, 반생명적 경제라는 것은 결코 잊혀져서 안된다.
그러나 지금까지의 경제적 관행이 하루빨리 극복되어야 하는 것은 반드시 생태적 위기 때문만은 아니다. 그동안 우리는 경제성장을 통해 생활수준의 향상을 경험해온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생활수준의 향상이 반드시 우리의 삶을 더욱 인간답게 하는데 기여하는 것은 아니었다는 중대한 문제가 있다.
오히려 생활수준이 향상될수록 우리의 삶의 내용은 갈수록 빈곤화를 경험해왔다고 할 수 있다. 우리는 텔레비전과 자동차와 컴퓨터를 갖게 되었지만 우리 삶의 기초인 땅을 황폐하게 만들고 공동체를 상실하고 자립적 생존의 가능성을 훼손하고 유례없이 이기심에 찬 병든 사회를 만들어내고 말았다.
이제 우리는 원점으로 돌아가서 삶의 기초와 근본을 성찰하지 않으면 안되는 상황에 이르렀다. 지금 우리가 직면한 경제위기는 일시적인 것이 아닐 가능성이 크지만 우리는 이 위기를 각자가 좀더 인간다운 존재로 되살아나는데 필수적인 자질, 즉 좀 더 겸허하고 가난한 삶을 선택할 수 있는 능력을 기르는 기회로 삼을 수 있을지 모른다.<녹색평론 발행인>녹색평론>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