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력한 입김” 사실상 협상 주도/미 “한국재벌 과잉투자” 피해의식/“이번 기회에 길들이기 의도” 내포한국정부와 국제통화기금(IMF)의 자금지원협상이 「잠정타결-결렬-재협상」 등으로 계속 지연되고 있는데는 미국의 입김이 강력하게 작용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특히 미국측은 지난달 30일의 한국정부와 IMF의 잠정합의안에 대해 강력하게 이의를 표시했고, 미셀 캉드쉬 IMF총재가 미국측의 이의를 받아들여 결국 재협상에 들어간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이 바람에 한국정부와 서울에 머물고 있는 IMF실무협의단은 잠정합의안에 가서명한지 16시간만에 재협상을 벌여야하는 「망신」을 당했다.
이와관련 정부의 한 관계자는 2일 『미국과 일본의 전문가(정부관계자)들이 극비리에 입국해 서울에 머물며 우리정부와 IMF의 협상에 깊숙히 개입하고 있다』며 『구제금융 지원규모는 물론 지원조건도 우리정부와 IMF 양자만이 결정해서 확정할 상황이 아니다』라고 밝혔다.
데이비드 립튼 재무부부차관보가 이끄는 미국정부관계자들은 IMF실무협의단이 묶고 있는 서울 힐튼호텔에 머물고 있는데 이번주 들어 재벌의 상호지급보증 조기금지 등 초강경 요구를 들고 나오는 등 이번주들어 IMF 협상을 사실상 주도하고 있다. 일본의 정부관계자들은 평소 일본이 눈에 가시처럼 생각해오던 수입선다변화제도의 폐지를 요구했다.
우리측 관계자들은 특히 미국의 경우 한국의 IMF긴급자금지원요청을 계기로 한국경제를 개조해야 한다는 입장을 가지고 있는 것 같다고 설명하고 있다.
현재 미국측이 추가로 집요하게 요구하는 부분은 상호지급보증의 조기폐지를 통한 사실상의 재벌해체, 한국인은 물론 외국인에 대해서도 종목당 1인 주식투자한도를 현행 7%에서 25%로 높이고 단기채권시장까지 개방하는 것을 골자로 한 자본시장 완전개방 등으로 전해지고 있다. 미국의 입장에서는 당연한 요구이기도 하지만 은행과 재벌은 한국경제의 근간이란 특수성을 감안하면 이는 한국경제의 전면개조를 뜻하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캉드시 총재가 재벌해체론을 들고 나온 점도 심상치않은 부분이다. 캉드쉬 총재는 지난 1일 스페인에서 가진 인터뷰에서 아시아의 경제모델에 문제가 있다며 인도네시아의 독과점(족벌)체제 타파와 한국의 재벌해체의 필요성을 제기했다. 또한 캉드쉬 총재는 2일 한국에 대한 구제금융 지원조건은 인도네시아가 모델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미국의 이같은 태도는 여러 측면에서 감지되고 있다. 「아세안+6 재무장관회의」 참석차 말레이시아에 머물고 있던 가이드너 미국 재무부차관보는 잠정타결이 결렬로 1백80도 선회한 지난 1일 『이번 기회에 한국이 충분한 지원을 받기 위해서는 한국정부에서 과감한 개혁조치를 밝혀 지원국으로부터 신뢰감을 주어야 한다』고 말했다.
지난달 스탠리 피셔 IMF수석부총재와 가아드너 차관보가 방한해 한국정부가 IMF에 자금지원을 요청할 것을 종용하던 시점에도 미국정부는 한국이 IMF에 지원을 요청하면 미국을 비롯한 세계각국도 지원에 동참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뒤짚어 이야기하면 한국이 IMF에 자금지원을 요청하기전까지는 미국을 비롯한 세계각국은 물론 국제금융기관들은 한국에 자금을 주지 않을 것이라고 「엄포」를 놓은 것이다.
미국은 왜 그럴까. 사실 미국을 비롯한 서방세계는 한국의 재벌들이 자동차 반도체 조선 등에 엄청나게 투자하는 바람에 자국이 피해를 입었고 더 나아가 한국의 과잉투자는 세계적인 공급과잉을 유발, 세계경제에 큰 소용돌이를 유발할 수 있다는 시각을 가지고 있다.
특히 재벌들이 이같이 엄청난 투자를 할 수 있는데는 정부의 비호와, 상호지급보증같은 「부당한」 금융관행을 활용해 엄청난 빚을 조달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판단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와함께 무기수입처를 미국일변도에서 유렵과 소련 등으로 다변화하고, 남미와 동구 등 신흥시장에서 한국재벌들이 자동차 가전시장 등에서 성가를 올리고 있는 점도 미국의 심기를 건드렸다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결국 서방, 특히 미국 경제계의 이익이 「IMF의 이름」으로 한국에 강요되고 있는 것이다.<김경철 기자>김경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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