급변하는 세상에서 약간 오래된 이야기지만 현재도 계속 유효할 것 같으니 끄집어 내 보기로 하자. 94년말 광복 50주년과 한일수교 30주년 특집 준비를 위해 일본을 방문했었다. 주로 일본의 싱크탱크인 여러 연구소를 찾아 관계자들과 인터뷰를 했다.당시 일본은 언제까지나 계속될 것 같았던 자민당 집권이 끝나 정치적으로 혼란스러웠고, 경제도 버블(거품)이 꺼지면서 후유증이 심각할 때였다. 그래서 당연히 질문은 대부분 『앞으로 일본경제는 어떻게 될 것인가』 『2000년대에도 일본이 계속 경제대국으로 남아있을 것인가』에 집중됐다.
인터뷰에 응했던 거의 모든 사람들의 대답은 의외로 한결같았다. 어려움이야 있겠지만 가능하다는 것이었다. 정치에 문제가 있지만 중산층이 탄탄해 경제가 정치의 영향을 많이 받지는 않을 것이며, 석유위기 엔화폭등 등 위기를 잘 넘긴 경험이 있다는 점을 근거로 내세웠다.
『그렇다면 일본이 안고 있는 가장 큰 문제점은 무엇인가』라고 물었을 때 답변 또한 거의 일치했다. 무한경쟁시대를 헤쳐나갈 지도자가 없다는 것이었다. 올바른 방향을 제시하고, 국민의 힘을 모아 그 방향으로 끌고 나갈 리더가 안보인다는 점을 우려했다. 서로 모순된 답변같았지만, 그후 곰곰이 생각해 보니 결코 엄살이 아니었구나 라는 느낌이 들었다.
국제통화기금(IMF) 지원을 받아야 할 정도로 추락해 버린 우리 경제를 놓고 그 원인이 무엇인가에 대한 논의가 활발하다. 멕시코 금융위기 해결을 위해 IMF는 95년초 우리에게 지원금 분담을 요구했는데, 어떻게 하다가 정반대의 상황이 됐느냐는 것이다.
여러 분석이 나오고 있지만, 한가지 분명한 것은 지도층에 있는 사람들이 세계정세의 변화를 제대로 읽지 못해 적절한 시기에 효과적인 정책을 실행하지 못했다는 사실이다.
「죽은 경제학자의 새로운 아이디어」라는 책으로 잘 알려진 토드 부크홀츠 하버드대 교수는 이런 말을 했다. 『경기호황은 요란하게 끝나는 것이 아니라 속삭이듯 종말을 고한다. 그래서 사람들은 어리둥절해 하면서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지?」라고 묻는다』 본질을 정확히 짚고, 방향을 제시할 지도자가 더욱 필요한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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