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의 지배자’ 출간맞춰 서울 나들이/스물다섯 나이불구 사유깊이까지 갖춰스물다섯 살의 젊은 프랑스 소설가가 프랑스 문단은 물론 국내에서도 화제를 몰아 오고 있다. 크리스토프 바타이유란 이름을 가진 젊은이. 바타이유는 지난해 말 처녀작 「다다를 수 없는 나라」가 번역돼 일부 국내 문인과 독자 사이에 『도대체 이 작가는 누구인가』 하는 폭발적인 궁금증을 불러일으켰다. 거기 답하듯 「람세스」의 역자인 시인 김정란(상지대 교수)씨가 올해 출간된 그의 최신작 「시간의 지배자」(문학동네 발행)를 번역 출간했다.
93년 「다다를 수 없는 나라」를 발표하며 혜성처럼 나타난 바타이유는 프랑스 고급문학을 이끌어나갈 차세대 작가의 대표주자로 현지 문단과 언론의 주목을 한몸에 받고 있다. 원제가 월남을 가리키는 「안남」(ANNAM)인 「다다를 수 없는 나라」는 18세기 베트남을 향해 떠난 프랑스 남녀선교사들의 영혼의 여정을 그린 작품. 이 소설로 바타이유는 『카뮈의 「이방인」이후 50년만에 나온 충격적 작품』이라는 극찬을 받았다.
「시간의 지배자」에서 바타이유는 처녀작에서 보여주었던 작품세계와 역량을 다시 확인시켜 준다. 17세기말 프랑스 베르사이유 인근의 상상적 공간인 공국 시테. 「시간의 지배자」는 이 시테의 시계수리공을 가리킨다. 시테에는 218개의 공식적인 시계와 그밖에도 스물네 개의 괘종시계가 있다. 시계 수리공이 없으면 시테는 그대로 늪이 된다. 「모래시계가 알려주는 시간으로는 우리의 삶에 리듬이 생겨나지 않는다. 벽시계가 똑딱거리는 소리 없이 어떻게 시간이 존재한다는 걸 믿을 수 있단 말인가」. 이 시테에 새로운 「시간의 달인」아르투로가 찾아온다. 그는 사람들이 알아듣지 못하는 영어로만 이야기하며, 비밀스런 방식으로 딸을 낳고, 밤마다 세차례씩 시테를 순회해 시계를 수리하면서 사실상 밤의 시테를 지배해나간다….
이야기 자체도 몽환적이지만 바타이유의 문체는 수수께끼처럼 독자를 휘감는 매력을 갖고 있다. 스물다섯이라는 나이가 의심스러울 정도로 삶에 대한 깊은 시각, 연금술로 거른듯한 언어를 구사하는 바타이유는 냉정한 단문체로 세계의 어떤 비의를 전달하려 하는 듯하다.
김정란 교수는 『바타이유에게서는 천재성이 느껴진다. 그 천재성은 주어진 것이 아니라 고급한 프랑스 문화 자체를 삶의 형식으로 받아들인 작가의 치밀한 전략에서 나오는 것』이라고 말했다. 대중문학처럼 많은 독자가 따를 수는 없지만 문학의 선도적 힘을 체화하고 있는 작가라는 것.
김 교수는 바타이유를 미국적 포스트모더니즘의 횡행에 대한 대항담론으로서의 새로운 프랑스 소설의 대표작가로 꼽기 주저하지 않으면서, 그의 작품세계는 아직도 전근대성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국내 문학계의 상황과도 대비된다고 말했다. 『그 젊은 나이에 전통을 계승하면서 세계로부터 버텨낼 수 있는 강인한 힘을 아울러 가진 이 작가는 환멸을 거쳐서 세련된 정신의 귀족』이라는 것이다.<하종오 기자>하종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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