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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데렐라는 있다/최인호 소설가(선택의 길목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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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데렐라는 있다/최인호 소설가(선택의 길목에서)

입력
1997.12.0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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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것은 끝이 났다. 밤 12시가 되기 전에 돌아가야 하는 신데렐라처럼 우리들의 무도회는 끝이 났다. 우리는 또다시 돌아가야 한다. 구박받는 계모의 부엌 아궁이 곁으로. 밤 12시가 되어 부랴부랴 집으로 돌아가다 한짝 유리구두만 남기고서. 그렇다면 누구인가. 그 유리구두를 주워 그 구두에 꼭 맞는 발을 가진 아가씨를 맞아 결혼하겠다는 왕자님은 누구인가. 기호 1번 이회창 후보인가. 2번 김대중 후보인가. 3번 이인제 후보인가.저마다 백마를 탄 왕자님이라는 장미빛 약속을 하는, 선거사상 최초로 열린 합동토론회를 지켜보는 내게 떠오르는 생각은 이처럼 동화 「신데렐라」와 고등학교 때 추억이었다.

그무렵 거의 모든 시험에 객관식 문제가 출제되기 시작했다. 수험생의 단답을 요구하는 주관식 문제는 채점의 어려움도 있고 공정성에도 문제가 있어 언제부터인가 거의 모든 시험은 객관식 문제로 바뀌기 시작하였던 것이다. 이른바 네 가지의 보기 중에서 한 가지의 정답을 골라내는 사지선다형의 문제였던 것이다.

어찌보면 네 가지 보기 중 하나의 정답을 골라내는 문제였으므로 단답을 요구하는 주관식 문제보다 더 쉬울 것 같았지만 나는 왠지 그런 식의 시험 방법에는 서툴러 쉽게 정답을 맞히지 못했었다. 왜냐하면 네 가지의 보기 모두가 다 정답처럼 보였기 때문이었다.

이런 내게 형은 다음과 같이 충고를 했었다.

『네 가지 보기중 하나의 정답을 선택하는 객관식 문제에서 가장 손쉬운 방법은 일단 틀린 답부터 지워나가는 방법』이라는 것이었다. 그리고 나서 형은 이렇게 결론을 내렸다. 『내가 지금까지 모든 시험에 합격하였던 것은 정답과 함정의 판단을 비교적 잘했기 때문이다. 정답과 함정의 차이는 이렇다. 정답은 정답 이상도, 이하도 아닌 정답 그 자체이다. 그러나 함정은 정답보다 더 정답같고 정답 이상으로 정답처럼 보인다. 그래서 나는 남은 두 가지 중에서 애매할 때에는 설명이 긴 문항보다는 설명이 짧은 문항을 선택하곤 했었다』

세 왕자님의 합동토론회를 보면서 정답보다는 틀린 답부터 우선 골라내었던 지난날의 사지선다형 문제를 떠올린 것은 씁쓸한 일이다. 세 사람의 후보중 나는 하나의 정답을 선택해야 한다. 그러나 그 정답이 제대로 보이지 않으니 나는 형의 충고처럼 틀린 답부터 찾아내어 지워가야 하는 것이다. 내 선택기준은 이렇다.

기호 1번 이회창 후보는 아들의 병역문제로 도덕성에 치명적인 타격을 입었다. 그러나 내게 있어 그 도덕성은 별로 문제가 되지 않는다. 인간에게는 누구나 약점이 있게 마련인 것이다. 만약 이후보가 그 고통을 딛고 일어서 도덕 재무장을 한다면 오히려 더 좋은 기회가 될 것이다. 그보다도 내가 두려워하는 것은 그를 추대한 신당의 세력들이다. 그들은 3, 4, 5, 6공을 거쳐오는 동안 수없이 당의 이름만을 바꿔가며 교묘하게 양지에서만 처신해온 이른바 수구세력들이다. 그들에게 업혀서 과연 이후보가 독야청청할 수 있을까.

기호 2번 김대중 후보는 이른바 DJT연합으로 정권욕에 눈이 어두운 야합이라는 비난을 받았다. 그러나 이 연합의 성공은 칭찬을 받으면 받아야지 비난을 받을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그보다도 김후보에 대한 실망은 인간적인 것이다. 그는 우리나라 정치인중 유일하게 겨레의 스승이 될 수 있는 분이었다. 그런데도 그는 오직 대통령이기만을 집요하게 고집해오고 있다. 김후보는 도대체 왜 그렇게 권력에 집착하는 것일까.

기호 3번 이인제 후보는 경선에 대한 약속을 무시하고 독자출마를 한 사실에 대해서 부도덕한 정치인이라는 비난을 받았다. 그가 부도덕한 정치인이라고 도대체 누가 누구에게 돌을 던질 수 있을 것인가. 내가 두려워하는 것은 이후보가 약속을 깨고 출마한 사실보다 정치에는 차차기는 없다고 5년을 기다리지 못한 그 조급함이다. 5년조차 기다리지 못하는 조급한 젊은 그에게 우리는 도대체 무엇을 기대할 수 있을 것인가.

『맞는 답을 고르기보다는 틀린 답부터 골라 지워나가라』는 형의 충고는 내게 혼란을 불러일으켰다. 그러한 내게 형은 이렇게 말하였다. 『정답부터 선택하든 틀린 답부터 골라 지워나가든 정답은 분명히 있다. 이것은 진리이다. 네 가지 보기중 하나는 분명한 정답인 것이다』

그렇다. 합동토론회에 나온 이회창, 김대중, 이인제 이 세 사람은 하느님이 우리 민족에게 내주신 21세기의 민족 운명이 걸린 사지선다형의 답안들이며 그중 한 사람은 정답이다. 세 사람 중 한 사람은 유리구두를 들고 찾아와 우리를 구박받는 부엌 아궁이 하인에서 신데렐라의 공주님으로 격상시켜 줄 우리들의 왕자님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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