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미 직접대화 진전 ‘4자’ 의제 집착 필요없어져/신뢰구축·남북대화 등 북 정권안정연계 진행될듯미국의 역사학자 조셉 굴든은 그의 책 「한국전쟁 비사」의 말미에서 한반도의 냉전적 상황을 두 마리의 전갈이 서로 꼬리를 물고 사투를 벌이는 모습으로 그리고 있다. 요즘 진행되는 남북관계도 크게 다르지 않다. 지난 21일 북한이 4자회담 본회담 개최에 참가할 것으로 보도된 후 북한의 태도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4자회담의 제의는 96년 4월 한·미정상이 한반도의 영구적 평화, 남북간의 긴장완화, 남북대화개최를 위한 4자회담에 동의한데서 비롯됐다. 한국은 이 회담에서 한반도의 영구적 평화를 위한 남북간 직접 논의에 의한 평화협정체결을 강조하면서 또한 북·미관계의 진전은 남북관계의 진전과 보조를 같이 해야함을 명백히 했다.
북미관계는 94년 12월 미국이 2003년까지 경수로를 제공하는 것을 내용으로 하는 기초협정을 체결하면서 진전됐다. 이 협정의 두번째 부분은 북미양측이 정치·경제적 관계의 완전한 정상화를 향해 나아갈 것, 양국의 무역·투자에의 장벽철폐, 쌍방간 연락사무소 개설, 쌍방관계의 대사급관계로의 격상을 명시하고 있다. 이외에도 양측은 비핵화한 한반도에서 평화와 안보를 위해 함께 노력할 것에 합의했다.
한·미·일 3국간의 대북한정책조정을 위한 협의기구가 96년 1월부터 가동되었다. 이 회의에서 미국은 북미간의 기초협정이 핵문제 이상을 포괄하고 있다는 것을 강조하면서 이 협정을 미국의 장기적 목표인 「지속적인 평화와 궁극적인 통일」을 향한 광범위한 접촉을 촉진하기 위해 이용할 의도를 밝혔다. 이에 추가하여 북한의 재해에 대한 인도주의적 고려에서 국제기구를 통한 북한에의 식량제공의사를 밝혔다.
미국은 북한과 중국에 대해 정도의 차이는 있으나 다같이 인게이지먼트(Engagement)정책을 적용하고 있다. 이것은 두 나라가 국제적 관례와 법규에 순응하도록 이끌어 동아시아 내지 아·태지역에서의 국제질서에 편입되도록 하기 위한 것이며 미국은 여기서 주도적 역할을 하기를 기대하고 있다. 북한이 이러한 미국의 포괄적 정책의 의미를 어느정도 의미있게 파악하고 있는가는 중미와의 관계설정에서 그 일단을 엿볼 수 있다.
4자회담 본회담의 종합적 의제는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과 긴장완화를 위한 제반문제」로 알려지고 있다. 북한이 종전에 의제로 주장하던 북미간 평화협정체결과 주한미군 처리문제, 식량지원에 대한 사전보장 등에서 이러한 주제로 바뀐 것을 하나의 변화로 보아야 하는가는 별도의 문제이다. 11월26일 열렸던 북미간 준고위급회담에서 양측은 경제제재의 완화, 미사일회담 재개, 대북식량지원문제 등을 그 주제로 하였다. 경수로를 포함한 북미기초협정 내용에서의 북미관계의 진전, 북미직접회담에서의 논의의 진전 등을 감안하고 또 화학무기와 같은 문제로 미국을 끌어들일 협상이 계속될 것으로 본다면 북한은 더이상 4자회담의 의제문제에 집착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주한미군문제에서는 북한측이 주장하는 미국과의 평화협정체결은 미군철수주장의 명분과는 논리상 맞지 않다고 볼 수 있다. 비록 4자회담 본회담 참여결정에서 중국이 북한에 영향력을 행사했다고 할지라도 중국에서 들고나오는 주한미군철수의 주장이 북한의 입장과 반드시 일치하는 것이라고는 볼 수 없다.
최근 미국 일각에서는 북한에서의 권력변화, 북미회담 및 4자회담 의제에서의 북측의 태도를 하나의 변화로 보려는 움직임이 있으며 이들은 북한에 대한 인식에서 미국도 변화가 있어야 함을 주장하고 있다. 북한이 다양한 협상채널을 보유하고 있는 사실과 실질적으로 미국을 정치·경제적으로 개입시키는데서 진전이 있다는 사실을 감안하면 북측의 4자회담에서의 유화적인 태도는 충분히 예측될 수 있다. 특히 군사부문에서의 신뢰구축, 남북대화 등에서 합의가능성이 높으나 그것은 북한이 미국의 대북경제체제 철폐 등의 실질적 진전과 연계시킬 가능성이 높고 동시에 북한의 정치권력의 안정적 정착과 맞물려 진행될 것이다.
한반도 주변과 관련국들은 새로운 안정적 관계형성을 위해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미국의 장기적이고 포괄적인 정책에서 비롯된 미중관계의 새로운 적응모색, 미일관계의 발전적인 재정립, 미, 일, 중, 러의 협의체제구성 등을 고려할 때 한반도의 국제적 위상을 높이는 것이 중요하다. 이를 위해서는 4자회담을 적극 활용, 소모적인 한반도에서의 냉전적 상황을 종식시키는 것이 긴요하다는 인식을 북한에 불어넣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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