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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나’를 기다리며/김병주 서강대 교수·경제학(화요세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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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나’를 기다리며/김병주 서강대 교수·경제학(화요세평)

입력
1997.12.0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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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벼랑까지 온 우리경제 영 대처수상 같이 구조조정 성공으로 이끌 정치지도자를 보고싶다요즘 한국인을 엄습하는 스산한 느낌은 계절탓이겠지만, 통렬한 자멸감은 나라살림 탓이다. 짙은 안개속 한국경제의 진로는 한치 앞이 어둡다. 외환보유고가 거의 거덜나 금융기관과 기업들이 벼랑 끝에 섰다. 공여될 국제통화기금(IMF)자금 자체는 미흡한 규모이지만, 미국 일본 등의 국가로부터 협조융자금의 물꼬를 여는 힘을 가진다. 확보될 1선, 2선 크레디트라인을 모두 합치면 한국의 단기외채에 근접하는 500억달러 이상의 규모에 이를 것이다.

정부당국은 경제성장률 감소, 예산규모 축소, 부실금융기관 폐쇄정리 등 여러 조건을 놓고 IMF실무팀과 힘겨운 막바지 협상을 주말 연이틀 밤낮없이 벌여왔다. 94년말 외환시장 붕괴이후, 수년간 멕시코가 경험했던 엄청난 경제사회 진통이 우리 발등에 떨어진 불로 다가왔다. 구조조정의 어려움은 환율인상―물가·이자율·세율등의 인상―투자심리 위축―실업률 상승―경제성장률 저하 등으로 이어질 것이다. 반면 수출신장, 수입위축에 따라 무역수지는 어느 정도 개선될 것이다.

구조조정 비용을 제대로 치르지 않고서는 국민경제의 회생이 불가하다. 이같은 경제난국의 발생계기를 동남아 통화위기의 여파로 외국기관투자가들이 투기자금을 회수한 탓만으로 돌릴 수 없다. 난국의 빌미는 대부분 국내에서 축적되어 왔다.

지난 며칠간 협상 테이블에서 재경원당국이 국익을 위해 애써온 노력을 인정한다. 그러나 이들이 마치 네덜란드의 전설속 소년처럼 제방의 붕괴를 막으려 터진 물구멍에 손을 넣어 홀로 막았다는 애국적 상념의 자만에 빠진다면 가당치 않다. 국민경제 제방에 구멍이 날 지경으로 사전예방에 소홀했던 책임을 통감해야 한다. 중앙은행도 보유외화자산의 운영자로서 직무에 충실하지 못했다. 물론 몇해전 영국의 사례에서 보듯이 개방경제시대에는 시장투기세력이 웬만한 중앙은행의 시장조정기능을 능히 압도할 만큼 강하다. 그러나 우리 관련기관들은 통화위기 조짐에는 이목을 돌리고 금융개혁을 아전인수로 이끌며 관련법안 입법화를 좌절시키고 외국투자자들의 마지막 한가닥 기대를 저버렸다.

정부주도아래 산업정책이 가능했던 시절이 마감된 상황에서 금융기관의 역할변화에 정부도 은행도 둔감했다. 국제무역기구(WTO)시대에는 통상산업부 등 정부관료가 아니라 은행의 대출심사역이 기업투자 조정을 담당해야 한다. 그럼에도 알게 모르게 정부의 개입은 계속되고 금융기관은 부동산 담보나 대기업순위만 믿고 심사하여 건성으로 돈을 내주고 있었다.

금융기관을 가지고 놀며 부실화시킨 주범은 기업이다. 지난날 고도성장, 고물가, 오름세 시대에 문어발 확장으로 외형을 불려온 기업들의 성공비결은 작은 자기자본을 밑천으로 가급적 많은 타인자본을 국내외 금융시장에서 빌려쓰기 용이하도록 재무제표를 분식하고 정경유착 고리를 이용하는 것이었다. 필요한 비자금이 클수록 분식의 정도를 심화했다. 상호출자방식으로 기업의 손익이 어디로 빼돌려지고 메워지는지 알기 어렵다. 주식시장도 자금조달의 창구일뿐 소액주주의 이익은 안중에 없었다.

저렴하고 근면한 노동력에 기초했던 기업의 국제경쟁력이 민주화이후 임금은 4∼5배 가까이 오른 반면, 생산성은 오히려 감퇴해 동남아 개도국에 밀렸다. 중화학이나 첨단산업의 경쟁력은 연구개발부족으로 선진국시장에 발붙이기 어렵다. 무역수지가 적자기조를 벗어나지 못하는 것은 당연하다. 산술평균적 평등주의사상은 각계각층의 욕구를 부추겨 GNP의 5% 요구가 입버릇이었다. 혼미하고 취약한 정부는 이런저런 예산요구를 응하다보니 재정규모는 확대일로였다.

이럴 때 우리는 어려운 구조조정을 성공시켜 영국경제를 되살린 대처수상을 생각하게 된다. 당시 그녀의 별명은 TINA였다. 항상 개혁이외에 「다른 대안이 없다」(There Is No Alternative)라는 말을 즐겨했기 때문이다.

우리도 구조조정 고통의 불가피성을 올바로 알고 국민을 이끌 정치지도자를 선출해야 한다. 내년 경제성장률 3%이내, 실업인구 100만명이상, 높은 인플레이션 등 피말리는 어려움이 예상된다. 실질소득하락, 실업인구 증가는 사회의 결집력을 혹독하게 시험하고 민생질서를 어지럽힐 것이다. 아직 한국경제는 그래도 높은 저축률, 마음먹으면 열심히 뛸 고급 노동력이 있다. 작은 정부, 경쟁력 있는 기업, 일하는 노동자, 검약하는 가계를 이끌고 나아갈 정치지도력이 필요하다. 이래서 우리는 TINA라는 애칭의 지도자를 기다린다. 한심한 정치인은 『나밖에 대안이 없다』로 오해할까 걱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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