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통화기금(IMF)의 「신탁통치」로 한국은 간신히 「국가부도」를 면하게 됐다. 제2의 국치다. 아시아의 네마리 용이라는 찬사와 질시를 받던 시절이 엊그제 같은데, 정녕 꿈이었던가. 너무 일찍 터뜨렸던 샴페인의 찬란한 거품이 걷힌 뒤 비로소 우리는 백척간두에 서 있음을 깨닫는다.분수를 외면했던 우리의 자화상을 김수환 추기경과 한 외국인은 이렇게 집약했다. 김추기경은 지난 29일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열린 한인천주교회 합동미사의 강론을 통해 『한국이 경제적 난국에 처하게 된 책임은 사치와 소비에 흘렀던 우리 자신에게 있다』고 지적했다. 형사정책연구원 연구위원으로 서울에 거주하는 프랑스인 마리즈 부르뎅씨는 『외국인들이 보기에 너무 빨리 부자가 된 한국인들은 좋지 못한 소비행태를 보여주었다』며 『불행하게도 세상에 화수분은 없다. 그러니 언제나 아껴서 써야 한다』는 내용의 기고를 본보 1일자 33면에 실었다. 재물이 끊임없이 생겨 아무리 써도 줄지 않는 화수분은 이 세상에 없다. 이는 진리다. 우리도 잊고 사는 「화수분」이라는 단어까지 내세운 충고가 뼈저리다.
이 지경까지 왔는데도 책임지는 사람은 없다. 가장 큰 책임을 통감해야 할 소위 문민정부에서 조차 「내 탓이오」라는 반성의 소리는 나오지 않는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국정의 일정부분을 책임져온 3당 대선후보 역시 마찬가지다. 모두 「네 탓」이지 「내 탓」은 아니다. 평생 흥청망청은 남의 나라 얘기처럼 여기며 근검 절약하며 살아온 많은 국민은 복장이 터진다. 아무도 책임지지 않은 이 마당에 차라리 국민은 「내 탓이오」를 외치고 싶다.
몇년전 천주교에서는 「내 탓이오」운동을 펼쳤다(최근 미사통상문의 「내 탓이오」표현은 「제 탓이오」로 바뀌었다). 이 운동의 밑바탕에는 회개·참회의 정신이 깔려 있다. 지금 우리에게 절실한 것은 「내 탓이오」의 자세이다. 지도층이 앞장서서 「내 탓이오」를 실천할 때 국민은 따른다. 그리고 두 말없이 허리띠를 다시 졸라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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