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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제에 다녀왔습니다(동창을 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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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7.12.0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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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의 고향인 거제에 다녀왔습니다. 이 나라의 팔도강산이 다 아름답지만 거제라는 섬이야말로 그 풍치가 뛰어나다고 느꼈습니다. 섬에서는 인물이 나지 않는다고 한탄하는 친구를 본 적이 있습니다마는 아마도 그는 풍수와 지리를 전혀 모르기 때문에 그런 말을 했을 것 입니다.서양문명의 발상지라고도 할 수 있는 희랍반도가 놓여있는 그 바다를 에게바다라고 하는데, 섬들이 많아 「에게」라 부른답니다. 지중해의 동쪽이 그토록 아름답듯 거제를 끼고 펼쳐지는 한려해상공원 또한 21세기에는 전세계의 관광지로 각광을 받게 되리라 믿고 있습니다.

거제시 가까이 있는 계룡산은 그리 높은 산은 아니지만 아마도 그 영산의 정기가 뻗어 맑고 시원한 바닷바람과 어우러지면서 이 나라의 14대 대통령을 탄생시켰으리라 생각합니다. 대우가 이룩한 옥포조선소도 엄청난 시설이었고 한국전쟁중에 악명이 높던 거제도 포로수용소의 옛터에는 삼성조선소가 우람하게 자리를 잡고 있었습니다. 해변가를 차를 타고 돌아보면서 굽이굽이 그 아름다움에 저절로 『좋다』를 연발했습니다. 각하의 고향은 정말 아름다운 고장이라 느꼈습니다.

이제 나이로 하자면 70객이 서울역에서 밤 12시가 다된 늦은 시각에 진주행 무궁화호를 타고 8시간 가까이 흔들리다 아침 7시30분쯤 진주역에 내려 마중나온 코란도에 실려 또다시 2시간, 마침내 거제섬에 도착했는데 이번 여행의 목적이 관광이 아니었다는 사실은 쉽게 짐작하실 수 있겠습니다.

각하께서도 익히 알고 계시겠지만, 거제에는 애광원이라는 사회복지시설이 있어 230여명의 장애아들을 맡아 먹이고 입히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그 애광원이 창립 45주년을 맞이하여 조촐한 기념식을 거행하는데 저더러 와서 예배에 「말씀」을 한마디 부탁한다기에 「진주라 천리길」을 마다않고 떠났던 것입니다.

물론 애광원과는 특별한 관계가 있습니다. 한평생 저의 스승이시던 백낙준 박사님 내외분과 저의 누님이시던 김옥길 총장님이 애광원의 김임순 원장님을 끔찍이 아끼고 사랑하셨습니다. 백박사님께서는 틈이 있을 때마다 그곳을 찾으셨고 여러날 유숙하기도 하셨으므로 애광원에는 선생님께서 이름지어주신 삼운대도 있고, 묵으시던 방도 그대로 있어 그 방에서 저도 하룻밤을 지내면서 친히 쓰신 글씨 「홍익인간」, 「실사구시」를 대하는 감개가 무량했습니다.

한국전쟁의 비극을 딛고 김임순 원장님은 거제의 바다가 보이는 낮은 언덕에 전쟁 때문에 버려진 어린이들을 모아서 조그마한 유아시설을 만들고 그들을 돌보기 시작했습니다. 지금으로부터 꼭 45년전, 김원장님은 이화여대 가정학과를 졸업한 20대의 젊고 아름다운 여성이었습니다.

장애아들과 더불어 45년, 거제의 바닷바람이 김원장님의 검은 머리에 어느덧 흰 서리를 내렸고 아름답던 얼굴에는 수없이 주름이 잡혔습니다. 한마디로 하자면 김원장님도 이제는 70대의 할머니가 되었습니다. 45년이란 세월이 어디 짧은 세월입니까.

애광원의 창립 45주년 기념식에서 제가 이런 말을 했습니다. 거제가 두 사람의 큰 인물을 이 시대에 우리 사회에 보내주었는데 한 분은 김영삼 대통령이고 또 한 분은 김임순 원장님이라고. 각하께서도 김원장님이 애광원을 시작하시던 때와 비슷한 시기에 정치에 입문하셔서 여당이던 자유당 후보로 거제에서 국회의원으로 당선이 되셨습니다. 「투표함 바꿔치기」라는 말을 아직도 거제 사람들이 하면서, 그 때 당선되고 곧 야당으로 당적을 바꾼 것은 배신이었다고 비난하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각하께서는 정계에 그 긴 세월 몸담아 계시면서 온갖 영욕을 다 겪으시다 드디어 청와대의 주인이 되셨고, 몇달 뒤에는 그 자리에서 물러나시게 되었습니다. 45년 세월의 뒤안길에서 애광원은 자라고 또 자라 오늘날 장애아들을 위한 시설로는 가히 세계적이라고 할만한 빛나는 금자탑을 쌓았습니다.

각하의 45년 정치생활의 결산은 무엇입니까. 「한강변의 기적」을 무너뜨렸다고 하면 지나치게 가혹한 평이 되겠지요.

거제 출신의 김임순 원장님과 거제 출신의 김영삼 대통령 두 분을 비교해 봅니다. 누가 정말 성공한 사람입니까.<김동길 전 연세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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