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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스크바의 겨울/이진희(특파원 리포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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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스크바의 겨울/이진희(특파원 리포트)

입력
1997.12.0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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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스크바는 이제 하얗다. 간밤에 더욱 많이 내린 눈으로 온천지가 하얀 눈밭으로 변했다. 엘니뇨현상 탓인지 예년보다 눈이 늦었다지만 「자동차 눈치우기」로부터 시작하는 러시아의 겨울은 이미 생활 깊숙이 들어와 있다.모스크바의 겨울은 음침하다. 무겁게 내려앉은 회색하늘과 도로 곳곳의 시커먼 눈더미, 더러운 자동차와 칙칙한 옷차림 등 음울한 「겨울색깔」은 사람의 마음을 짓누른다. 천성적으로 심성이 고운 러시아 사람들이 한묶음으로 크렘린같이 음흉하다고 비난받은 것도 길고 음산한 겨울탓인지 모른다.

겨울이 저만큼 다가오면 우리 교민사회에는 걱정과 한숨이 늘어만 간다. 이 지겨운 겨울을 어떻게 살아남느냐가 최대 화제다. 주변환경이나 생활여건, 경직된 관료주의, 꽉 막힌 사고방식 등 가는 곳마다 분통을 터뜨려야 할 일이 도사리고 있는데 햇볕마저 보기 힘든 삭막한 겨울은 마치 거대한 감옥같다.

97년 모스크바의 겨울은 더욱 우울하다. 하루가 다르게 들려오는 불길한 서울 소식에 교민들의 마음고생은 이만저만이 아니다. 유력 대기업의 잇단 도산과 감원태풍, 외환위기에 교민사회는 싸늘하게 얼어붙었다. 한두사람만 모여도 「모모기업이 철수한다더라」 「아무개 과장이 갑자기 들어간다더라」 「들어가면 자리가 없어 무조건 사표를 써야 한다더라」 등 실제상황과 「카더라」 통신이 범벅된 소식을 주고받으며 한숨을 내쉬기 일쑤다. 다른 한편 고국의 금융시장을 뒤흔든 외환위기와 본사의 경비삭감 지시에 도시락을 지참하는 주재원들이 크게 늘었다. 어떻게든 살아남아야 한다는 절박감에서 나온 몸부림이다. 그러다보니 그동안 교민사회를 사로잡았던 12월 대선 이야기는 언제부턴가 쑥 들어가버렸다. 위기를 몰고온 현 정권에 대한 성토는 여전하다.

현 선거법상 교민들에겐 투표권이 없다. 그렇기에 국내에 남아있는 친지 친구 동료 이웃에 대해 소박하지만 절실한 염원과 기대를 갖고 있다. 경제라도 제대로 챙기는 대통령을 뽑아주십사 하는게 그것이다.<모스크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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