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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은 필연인가 우연인가(정달영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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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은 필연인가 우연인가(정달영 칼럼)

입력
1997.11.3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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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리 계획된 일인가 돌발적으로 일어나는 일인가. 필연인가 우연인가.이 세상 모든 일의 발생과 소멸, 특히 역사 발전에 대한 관점을 두고도 이런 질문과 논의는 심심찮게 벌어진다.

가령 기독교 성지인 이스라엘을 여행하다 보면 그곳에 집적된 역사와 전승들을 두고 『그것은 필연인가 우연인가』를 묻는 반어법을 만나는 경우가 잦다. 예를 들면 「아우구스투스의 평화(Pax Augusta)」를 성취한 완미한 로마 제왕 아우구스토와, 그의 호구조사령에 응하려던 여행 길에서 마굿간을 빌려 태어난 예수가 하필 동시대인인 것은, 단순한 우연일 뿐이냐 아니면 어떤 계획이 숨어있던 것이냐 묻는 식이다. 이런 물음들은 대체로 「다만 우연일 뿐인 일은 없다」는 해답을 마련해놓고 있기 마련이다. 반드시 곡절이 있는 「필연」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역사 발전의 모든 고비와 계기를 필연과 우연으로만 양단해서 설명하도록 요구한다면 그때는 무리한 결과가 나온다. 자칫 결정론자와 같은 운명론에 빠질 위험이 없지 않다. 「그렇게 되도록 돼있었으니 내게는 책임이 없다」고 도망치는 구실로서도 그만이다.

묻고 싶은 것은 지금 이곳의 「대란」이다. 1997년 11월의 마지막 주말을 먹구름으로 뒤덮고 있는 이 나라의 경제위기는 그렇다면 미리 계획된 일인가 돌발적으로 일어난 일인가. 「경제의 신탁통치」로 일컫는 이 새로운 경험은 역사의 필연인가 우연인가. 결정론도 운명론도 아니다. 우연하게 여기까지 이른 것은 더욱 아니다. 확실하게 「예정됐던 일」이 일어난 것에 불과하다는 게 그 대답이다. 필연이다.

「사전 경고」가 없었다는 지적도 있으나, 일각의 안정성장론은 그때마다 정부관리들에 의해 외면되고 면박당했을 뿐이다. 고투자-고성장 신화에 중독된 낡은 의식만으로 구조조정이며 균형발전 같은 「역동적이지 못한」생각들을 받아들이지 않았던 결과라고 한다. 그들에게는 「선진국 진입」의 업적을 과시하고 국민의 과소비를 부추기는 일이 더 바빴다. 국민은 그것이 어떤 결과를 가져올 것인지 눈치챌 겨를도 없이 해외나들이에 나서고 달러를 휴지처럼 뿌리며 먹고 마시는 졸부놀음에 푹 빠져들었다. 생각해 보라. 그러고도 지금의 이 대란이 예정되지 않았다면, 그 「계획」은 잘못된 것일 수 밖에 없다.

문제는 언제나 국민의 처지다. 한보사태 이후 그 위기상황을 관리하면서 문민정부가 보여준 무능하고 무정견하며 무책임한 그 모든 실정의 대가를 고스란히 받아안을 수 밖에 없게된 이 국민!

경제 위기를 헤쳐나가는 유일한 처방도 다만 「국민이 잘해야」한다고 다그침 받는, 그래서 지갑 속의 마지막 달러 화폐 한장을 찾아들고 길거리로 나서는 이 착한 국민!

그런데도 김수환 추기경이 말하듯이 『한국이 경제적 난국에 처하게 된 책임은 분수를 모르고 흥청망청하며 사치와 과소비에 흘렀던 우리 자신에게 있다』고 뼈아픈 자책부터 앞세워야 하는, 이 불쌍한 국민!

중요한 대목은 그 다음에 이어진다. 이 모든 위기와 난국은 『우리의 삶을 반성하고, 다시 부지런히 일하고, 상부상조할 줄 아는 민족이 되라고 그분께서 채찍을 드신 것』이라는 덧붙임이다. 「하느님의 채찍」을 지금 우리는 맞고 있는 것이라고 생각하라는 것이다.

소설이 지난 게 언젠데 겨울비가 그치지를 않는다. 그러나 그렇다고 언제까지나 계속될 비는 아니다. 이 비가 개면 아마도 혹한이 엄습할 것이다. 혹한이라는 표현보다 더 춥고 더 황량한 대량해고의 회오리가 12월을 예비하고 있다. 불과 2년 전에 2조5,000억원의 순익을 냈던 초우량 첨단 기업이 지금은 스스로 「생존의 위기」를 말하는 지경이다.

몇해 전 「내 탓이오!」캠페인을 벌였던 한 단체가 올해에 내건 슬로건은 「이제 제 자리를 찾아 나섭시다」라고 한다.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론 까지 나오기에 이른 국민적 분노가 설 자리는 지금 어디란 말인다. 국민은 언제나 소외되고 당하고, 그래서 분노하지만, 국민이 제자리를 잡지 않으면 이 나라를 지탱할 힘은 어디에도 없다. 분노를 삭이면서 결국 국민은 제 자리를 찾아 나설 것이다. 이번에야말로 대통령을 잘 뽑는 것은 그같은 제자리 찾기의 첫걸음이다. 그것이 바로 계획된 일이고 필연이다.<심의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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