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일 의정부 실내 체육관에서 열린 한나라당 연설회는 적당한 규모의 청중과 적당한 열기 속에서 진행됐다. 「깨끗한 정치 튼튼한 경제」를 외치며 다른 후보들을 공격하는 이회창 후보의 연설도 적당한 강도를 유지하고 있었다.87년과 92년 대선의 유세장들은 얼마나 뜨끈뜨끈 했던가. 대통령을 내손으로 뽑겠다는 국민의 열망으로 대통령 직선제 개헌을 쟁취했던 87년의 유세장은 감동적이기까지 했다. 구름처럼 모여든 100만 인파, 후보들이 쏟아내는 사자후, 민주주의를 되찾았다는 기쁨으로 유세장은 터질듯 달아 올랐었다. 그러나 그때 우리가 뽑았던 대통령들이 지금 어떤 처지에 있는가를 생각하면 다시 그 유세를 떠올리는 것 자체가 무색해진다.
97년 대선은 선거운동의 핵심이 유세장에서 TV로 옮겨지는 변화를 맞고있다. 「돈안드는 선거」를 위해서 가장 먼저 추방된 것이 옥외유세다. 경쟁적으로 청중을 동원하면서 엄청난 부담을 감수했던 각 정당들은 개정선거법에서 대통령선거 연설회를 옥내로 가두는데 합의했다. 그대신 각 정당의 후보와 연설원들은 시장이나 역전 등 사람들이 많은 곳을 찾아다니며 거리유세를 할 수 있다.
기호 1번을 표시하기 위해 엄지 손가락을 세운 이회창 후보, 부드럽게 웃고 있는 조순 총재의 대형사진이 한나라당 연설회장 단상위에 나란히 걸려 있었다. 법관으로 경제학자로 이나라의 존경받는 전문 직업인이었던 그들이 정치의 세계에 몸을 던져 산전수전 겪고 있는 모습을 보면 착잡해 진다. 정치는 아편이라는데 그 어떤 원로도 결국 중독이 되고 마는 건가 안타깝기도 하다. 그러나 『대통령 이회창, 대통령 이회창』을 연호하는 청중사이로 손을 흔들며 나타난 이회창씨는 최근의 지지율 상승에 크게 고무된 모습이었다.
그는 여당 사상 최초로 경선을 통해 선출된 대통령 후보라는 정통성과 「법대로 원칙대로」라는 강직한 이미지를 갖고 있고, 최근 조순씨와의 연대로 「깨끗한 정치」에 「튼튼한 경제」를 보태는 금상첨화의 성과를 올렸다. 그러나 그는 아들들의 병역문제 이외에도 몇가지 점에서 자신을 방어해야 한다.
김영삼 대통령에 의해서 감사원장과 국무총리로 발탁되고 신한국당 대통령후보가 될 수 있었던 이회창씨, 김대중씨의 도움으로 서울시장이 된 조순씨는 「3김청산」을 슬로건으로 내걸고 있다. 명분이 좋더라도 그들은 정치적 배신이라는 멍에를 벗어나기 어렵다. 한나라당은 또 국가경제 파탄에 책임을 지라는 공격을 받고있다. 대통령이 탈당했으니 신한국당은 여당이 아니었고, 이제 한나라당으로 새출발했는데 무슨 책임이 냐는 그들의 논리는 설득력이 약하다. 3공에서 문민정부까지 권력의 노른자위를 놓치지 않았던 인물들이 그의 배후를 이루고 있다는 것도 이회창씨의 이미지와는 안 맞는 부분이다.
『금융실명제에 대해 말이 많은데 그당시 하자 하자했던 사람들은 야당이었고, 신한국당에는 반대자가 많았습니다. …경제가 오늘 이 모양이 된 것은 정경유착 때문이고, 3김정치가 그 원인입니다. 전직 대통령에게 20억원을 받았다고 자기 입으로 말한 사람이 누구입니까. …저는 한 평생 정도만을 걸어왔고 앞으로도 정도를 걷는 대통령이 되겠습니다. …우리당만이 지역감정에 기반을 두지 않은 전 국민의 당입니다. …무능한 정부 무력한 지도력은 국민에게는 재앙입니다』
이회창 후보의 연설은 몇가지 쟁점들에 대한 공격과 방어로 이어졌다. 『지금 국민의 소망은 다시는 대통령이 정치자금 문제로 곤욕을 치르거나 감옥에 가는 일이 없어야 한다는 것인데 그 소망을 이루려면 깨끗한 후보를 대통령으로 뽑아야 합니다』라고 이지역 출신 목요상 의원도 소리를 높였다. 연설회는 싱거울만큼 빨리 끝났다.
서울의 한강 백사장과 여의도 광장과 보라매 공원, 부산의 수영만, 대구의 수성천변에서 열렸던 그 어마어마한 집회들은 구시대 정치의 유물로 역사에 묻혔다. 그것들이 사라짐으로써 격정의 정치가 이성의 정치로 바뀌어 갈까. 청중을 동원하기 위해 각 정당들이 쏟아붓던 막대한 선거자금이 줄어들면 정경유착의 고리도 끊길까. 유세장에서 달아오르던 유권자들의 열정을 대치하는 다른 어떤 가치가 자리잡게 될까.
이 질문들에 대한 첫 대답은 12월18일 유권자들이 해야 한다. 개인의 이해관계, 지역감정, 선입관 등을 떠나서 나라의 미래를 심사숙고하며 투표한 국민만이 새정치를 요구하고 강제할 수 있다. 격정의 정치를 마감하고 이성의 정치를 출발시킬 수 있는 것은 연설회의 스타일이 아니라 유권자의 자각이다.<편집위원>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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