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효약? 독약?/장기채 발행“장롱속 돈 끌어내 위기해소”“효과 적고 금융실명제 위배”/대출금 연장“자금회수 따른 도산 방지를”“빚기업 돕다 자금흐름 망쳐”무기명장기채권발행과 금융기관 대출금의 상환연장조치 등의 대통령긴급명령이 발동되면 과연 지금의 경제난이 해결될 수 있을까. 국제통화기금(IMF)의 구제금융 요청이후 극심한 자금난을 겪고 있는 대기업들의 건의와 한나라당 국민회의 국민신당 등 3당 대선후보들의 즉각적인 화답으로 실명제 유보(폐지) 등이 경제난의 유력한 「해결사」로 부각되고 있다.
재계와 정치권은 자금이 돌지 않는 「동맥경화」와 금융기관의 무차별적인 자금회수를 해결하기 위해 이같은 내용의 특단조치가 필요하다고 주장하고 있으나 정부당국은 효과도 없을 뿐더러 부작용만 낳는다며 「불가」입장에서 한발짝도 물러서지 않고 있다.
◆무기명장기채권 발행
무기명장기채권 허용론은 실명확인을 하지 않고 자금출처도 묻지 않는 장기저리의 채권을 발행하자는 것이다. 재계와 정치권은 장롱속에 아직도 많은 돈이 있으며, 이 돈을 끌어내 자금이 정상적으로 돌도록 하기 위해서는 무기명장기채 발행이 허용되어야 한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정부는 음성적인 자금은 장롱속에 숨겨져 있는 게 아니라 가·차명 계좌를 이용해 이미 각종 금융기관을 거치며 일정부분은 산업자금으로 활용되고 있다고 반박한다. 또 무기명장기채를 발행하더라도 달러가 들어오거나 금융기관의 대외신인도가 올라가지도 않고, 상속·증여세를 피할 수 있는 창구만 열어줄 뿐이라는 입장이다. 무기명장기채발행 허용과 금융소득종합과세 유보는 사실상 금융실명제 폐지를 의미한다.
물론 경제팀 일각에서는 증시안정을 위해 무기명장기채 발행을 검토했던 게 사실이다. 그러나 최근 금융시장의 마비는 IMF 구제금융이후의 금융기관과 산업의 구조조정 강도에 대한 불확실성에 기인한다고 분석, 당장 무기명장기채 발행을 허용하더라도 주가는 오르지 않을 것이라는 쪽으로 선회했다.
◆「대출연장」 긴급명령
재계는 지난 27일 『은행과 종금사들이 만기도래하는 차입금을 무조건 회수하려 들고 있기 때문에 기업들이 연쇄도산의 위기에 놓여있다』며 『대통령의 긴급명령으로 금융권이 만기도래하는 차입금의 상환을 한시적으로 연장해 줄 수 있도록 해달라』고 건의했다. 다음날 정치권은 같은 이유로 이같은 긴급명령을 김영삼 대통령에게 요구했고, 김대통령이 이를 일축하자 재차 『사태의 심각성을 외면하고 있다』고 받아쳤다.
재정경제원은 이와 관련, 금융기관대출금 상환연장조치는 농어촌부채탕감처럼 형평성에 어긋날 뿐만 아니라 경제혼란만 가중시킬 것이라며 재계와 정치권의 주장을 받아들일 수 없다고 밝혔다.
재경원 관계자는 『빚 많은 기업에만 유리한 조치』라고 전제, 『이번 조치가 시행되면 대출금 회수가 안돼 자금흐름이 끊기는데다 우량은행까지 멍들게 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멀쩡한 기업마저 자금난을 겪을 공산이 크고 재무구조가 나쁜 기업은 구조조정을 게을리 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금융계 관계자는 『72년 「8·3 사채동결조치」 당시에는 제도권 밖의 사채가 산업자금으로 쓰였다』며 『현재는 사채의 비중이 낮고 금융기관안에도 돈이 부족한 상태가 아니어서 대출금상환연장조치는 금융시스템만 마비시킬 수 있다』고 말했다.<정희경 기자>정희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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