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명제가 또다시 대통령선거운동의 쟁점이 됐다. 한나라당·국민회의·국민신당 등 3당이 금융실명제의 대폭보완, 즉각정지, 전면수정보완 등을 들고 나왔다. 표현의 차이는 있으나 모두 금융실명제를 폐지하겠다는 속셈이다. 한나라당은 심지어 김영삼 대통령의 현정부가 수정, 보완을 하지 않는다면 단독으로라도 입법추진하겠다고 했다. 김대통령은 수정을 명백히 거부하고 있어 그 귀추를 지켜봐야 겠다. 3당은 금융실명제의 보완, 폐지주장에 보다 논리와 설득력이 있어야 했다고 생각한다. 이들은 금융실명제폐지의 정당성을 주로 경제살리기에서 찾고 있다. 기업의 자금난이나 경제발전에 소요되는 자금부족을 덜어주기 위해 숨어 있는 돈의 양성화가 절실하며 이를 위해 실명제는 퇴장돼야 한다는 것이다.현 경제위기상황에서는 귀를 솔깃하게 할 수 있다. 그러나 한 꺼풀 벗겨보면 이 주장이 「경제살리기」보다는 「득표」에 비중을 둔 정치적 주장임을 알 수 있다.
3당의 금융실명제폐지론이 국민다수를 설득하자면 우선 객관적이고 실증적인 자료에 입각해야 하는데 이것이 전혀 없다. 실명제폐지로 기업자금난이 해소되는 것이 확실하다면 주저할 필요가 없다. 보완이 아니라 즉각 없애야 한다. 국민 누구도 반대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한 확신은 없다. 얼마의 자금이 새삼스럽게 양성화될지 모르겠으나 사실 크지 않을 것으로 생각된다. 자금이 실명제라 해도 사채시장, 제2금융권, 은행 등의 출입에 거의 지장이 없었다. 차명의 길이 열려 있었기 때문이다. 금융실명제실시후 몇개월 동안만 위축이 있었지 금융시장은 이전과 같이 곧 정상화됐던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그 동안 금융실명제아래에서 94, 95년엔 연간 성장률 10%에 접근하는 호황을 누렸다. 뭣보다 금융시장이 시장개방영향도 컸지만 지장없이 성장과 발전을 해왔다. 전혀 위축이 없었다. 이것이 통계적으로도 뒷받침된다. 심지어 경제위기가 본격화된 최근에도 시중자금의 금융시장유입은 증대되고 있다. 실명제가 자금난의 만병통치약인 것처럼 주장하는 것은 큰 무리다. 3당의 주장은 실명제가 불편한 일부 계층들의 요구를 대변한다고 하겠다.
이 시점에서 실명제를 폐지한다면 의문스러운 효과를 위해 실명제의 그 모든 명분과 실리를 잃는 것이다. 첫째 역사의 진행에 역행하는 것이다. 세계는 기업경영의 투명성을 요구한다. 경제의 정의가 불가결해 진다. 이번 경제위기를 촉발하게 된 해외자본의 탈출도 한국기업과 금융체제에 대한 불신에서 시작된 것이다. 이들을 다시 불러들이려면 경영과 경제의 투명성과 적법성이 긴요하다. 둘째는 지하경제의 폐해가 다시 극심해 질 수 있다. 탈세방지가 사실상 불가능해지고 여기에 마피아 등 세계의 부정한 돈까지 침투, 세계의 돈세탁장이 될 수 있다. 경제정의는 완전히 소멸하게 될 것이다. 이에 따라 법과 질서의 문란이 심화될 것은 불을 본듯하다.
정치권 특히 3당 대통령후보들은 금융실명제의 존속이유를 성찰, 역사에 남을 과오를 범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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