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조건 실업해소’ 장밋빛 공약은 그만/중기창업 활성화로 새로운 고용창출 절실드디어 「고용대란」의 제1막이 올랐다. IMF 훈육의 본격적인 처방이 나오기도 전에 오른 제1막의 주역은 단연 삼성그룹이다. 삼성은 사장단 회의에서 「조직 30% 축소」라는 적기를 내걸었다. 주요 일간지들이 삼성의 대대적 감량경영의 신호를 일제히 1면 톱으로 다룬 것을 보면, 이 「적기」가 몰고 올 재계의 결연한 후속조치와 사회적 충격은 짐작이 가고 남는다. 내년은 한마디로 해서 처절한 대량해고의 해가 될 것이다.
사실 대량해고의 전주곡은 이미 95년에 울렸고 그 서막은 96년에 올랐다. 96년중에 한국의 간판급 대기업들은 「명예퇴직」이란 완곡어법으로 적어도 5,000명의 중견간부를 정리했다.
96년의 고용삭감극은 「IMF 틀」안의 대량해고를 알리는 전령이었다. 이 말은 양적 성장 일변도의 우리경제는 이미 대량해고의 필연성을 안고 있었다는 말과 같은 뜻이다. 전령은 올바로 받아들여야 한다.
우리 경제가 안고 있는 대량해고의 잠재성은 세계경제의 패러다임 시프트(Shift)안에서 이해해야 한다. 세계경제는 최근 20년 동안에 「대」에서 「소」로 이행하는 패러다임 시프트를 겪었으며 지금도 겪고 있다. 이 패러다임 시프트를 필자는 3D로 요약하고 싶은데 규모축소(downsizing), 중간계층파괴(delayering), 조직해체(deconstruction)가 그것이다. 세계의 앞서가는 대기업들은 모두 3D를 수반하는 철저한 구조조정을 하며 조직의 군살을 도려내고 또 도려내었다. 이름하여 「대량해고극」이다.
미국의 예를 보자. 미국의 500대 기업은 80년대의 구조조정 과정에서 400만명에 달하는 미증유의 대량해고를 했다. 작게 생각하라(Think Small!)를 사훈으로 내건 제너럴 일렉트릭스(GE)의 잭 웰치는 81년 4월 사장에 취임한 이래 약 10년 동안 10만명을 해고하여 92년에는 종업원수가 26만8,000명으로 반감하였다. 제너널 모터스(GM) 회장에 따르면 90년대 말의 GM규모는 80년대 말의 절반규모가 될 것이라 한다. 세계 최대의 파워 엔지니어링 그룹인 ABB(Asia Brown Boveri)는 그룹 재편 과정에서 취리히에 있는 본사의 임직원을 4,000명에서 200명 미만으로 엄청난 감축을 단행하였다. 그는 이 과정에서 「우리는 줄곧 성장하고 있지만, 동시에 위축되고 있기도 하다」라는 유명한 말을 남겼다. 이미 80년대에 진행된 세계적인 대기업의 가공할 대량해고극의 예를 들면 끝이 없다. 다만 대기업의 이 「살 도려내기 작전」을 관찰하면서, 존 나이스비트가 정립한 글로벌 패러독스라는 개념은 충분히 음미하고 받아들여야 한다. 글로벌 패러독스란 개념은 이렇다. 「세계경제의 규모가 커질수록 작은 경제단위의 힘은 보다 강력해 진다」
80년대부터 진행한 선진기업들의 대대적인 고용삭감 태풍이 한국경제에 대한 IMF훈육의 가시화와 더불어, 이제 한국의 산업계(대기업들)에 상륙하였다. 사회적으로 볼 때 엄청난 파괴력을 동반할 태풍이지만, 순수한 경제논리에 따라 냉철하게 살펴보면 「드디어 올 것이 온 것」이다. 지금 대선후보들이 내년에는 실업자가 100만명에 이를 것이라면서 목청을 돋우고 있는데, 우리는 이를 결코 현정권의 선견력 부족에 대한 공격과 맞물려 돌아가는 정치적 과장으로 해석해서는 안된다. 오히려 이보다 더 한 대량실업사태를 감내할 각오를 해야 한다.
이제 우리의 고용시장은 어떻게 대처해야 하나. 96년 미국대선에서 클린턴 진영은, 우리의 대선 후보처럼 무턱대고 100만명 수준의 실업을 해소할 수 있다는 허구의 대책을 외쳐대는 대신 이렇게 조용히 국민을 설득했다. 「평생동안 한 직장에 근무하는 것은 기대할 수 없으며, 경제적 변화의 정도가 크고 직장생활이 전세대보다 불안하다는 사실을 받아들여야 한다」 한국의 직장인들은 우리 대선후보들의 달콤한 공약에 취할 것이 아니라, 클린턴 진영의 이 메시지를 경청해야 한다. 한국 고용시장의 직장인들은 독립을 준비하는 모든 능력과 수단을 동원하고 준비하지 않으면 안된다.
대기업의 대량해고를 중소기업의 창업활성화를 통하여 흡수해야 한다. 미국은 실제로 이 현명한 정책을 택했다. 앞에서 말한대로 미국의 리스트럭처링 과정에서 대기업으로부터 무려 400만명이 축출되었지만, 같은 기간에 600만개나 되는 벤처기업과 중소기업이 생겨나서 1,300만명의 새로운 고용을 창출하였다. 이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이 중소기업에 대한 허용보조금 제도이다. 그들은 이 제도를 통해 WTO체제의 「보조금협조규정」을 교묘히 활용하였다. 정권에 도전하는 각 후보진영과 정책관료들은 이 타산지석을 연구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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