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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원공포/고개숙인 샐러리맨/“살아남기 경쟁” 기업문화 살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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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원공포/고개숙인 샐러리맨/“살아남기 경쟁” 기업문화 살풍경

입력
1997.11.2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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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윗사람은 방패 후배는 발판” 자조/동문명부찾아 「성공선배」 줄대기도/“임원실서 호출올까” 불안의 나날들기업 전반에 불어닥친 감원한파가 샐러리맨들을 옥죄고 있다.

지난해부터 불기 시작한 명예퇴직바람은 당시만해도 일부 취약한 기업의 특정부서나 특정인에 해당된 문제였을 뿐 대부분 회사원들에게는 남의 얘기나 다름없었다. 그러나 최근의 고용불안은 업종과 기업규모, 연령과 근속연수, 부서나 직급을 가리지 않는 무차별적이어서 아무도 자신의 「자리」를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 됐다.

전례없는 고용불안은 기업문화도 바꾸고 있다. 협동과 팀워크를 중시하는 분위기는 점차 퇴색하고 살아남기 위한 생존경쟁으로 바뀌고 있다. 샐러리맨 사회에는 살길을 찾아 떠나는 「철새파」, 눈치만 살피며 악착같이 버티는 「낙지파」, 겉으로는 태연하나 물밑에서 부업을 찾는 「문어발파」 등 서글픈 신조어들까지 등장하고 있다.

서울 S은행 M지점의 K모(34)대리는 요즘 대학 동문명부를 찾아 「잘나가는」선배들의 연락처를 뽑아 수첩에 옮기는 일이 중요한 일과가 됐다. 미리 안면을 터둔 뒤 「때」가 되면 일자리를 부탁하기 위해서다. 최근 그룹차원의 구조조정 계획을 발표한 S건설 해외영업팀의 C모(32)대리는 『10∼20%의 인원감축을 상정하면 우리 팀원 30명 중 3∼5명은 회사를 떠나야 한다』며 불안해 했다. 그는 『이달 초 운영경비 50%삭감 지시가 내려온 뒤 단 한차례의 회식도 못했다』며 『하지만 회식을 한다고 이 상황에 무슨 흥이 나겠느냐』고 반문했다.

국제통화기금(IMF)의 첫 구조조정 도마에 오른 금융권의 상황은 더욱 심각하다. S증권에 근무하는 K모(31)대리는 『농촌총각 다음이 옌볜(연변)총각이고 그 다음이 증권사 총각이라는 자조적인 신세타령이 만연해 있다』며 『윗사람은 감원의 방패막이, 후배는 밟고서야 할 디딤돌이 된 지 오래』라며 감원태풍이 만든 직장의 살풍경을 탄식했다.

이미 통·폐합 대상으로 지목된 D종금사 관리부의 L모(37)과장은 『아내와 퇴직후 대책을 가끔 상의하지만 이 나이에 돈도 없이 무슨 대안이 있겠느냐』며 『그나마 감정평가사나 공인중개사시험을 준비하는 동료나 후배들을 보면 부럽기도 하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일반 대기업의 경우도 사정은 크게 다르지 않다. D그룹 총무부의 P모(40)과장은 『요즘은 사무실의 누구든 임원실로부터 호출을 받을까봐 하루하루를 살얼음판을 걷는 심정으로 보낸다』며 『몇년전에 아내에게 직장을 그만두게 한 게 너무나 후회스럽다』고 말했다. 그는 『최근에 회사 화장실 벽에 「연말을 무사히」 「동지여 굳세게 버티자」 등의 낙서도 등장했다』고 전했다.<최윤필·박일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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