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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조계 종양’ 도려내자/정종섭 건국대 교수(전문가 진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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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조계 종양’ 도려내자/정종섭 건국대 교수(전문가 진단)

입력
1997.11.2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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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건 싹쓸이 변호사 비리 국가기능 파괴하는 중범죄/자격박탈제도 도입하고 전국민 감시운동 펴야「싹쓸이」라는 것이 못된 도박꾼들만 하는 짓이 아니었다. 전직 판사로 의정부시에 개업한 어떤 젊은 변호사도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사건을 싹쓸이하며 수억대의 돈으로 욕심을 채우더니 결국 검찰에 덜미가 잡혔다. 아예 내놓고 「사건 브로커」를 고용하여 건당 수임료의 20∼30%를 떼주며 형사사건을 쓸어가자 동료 변호사들이 보다 못해 수사를 요구하고 나섰다. 판사를 지낸 30대 변호사가 경찰관, 검찰과 법원의 직원, 법무사, 변호사 사무실 사무장 등을 동원하여 치밀한 조직망을 짜고 저인망으로 고기훑듯 사건을 훑어대는 앞에서 「하늘이 무너져도 정의를 세워라」는 가르침을 화두삼아 외로운 길을 가던 법률가들은 한 방에 나가 떨어져 그저 망연자실했을 것이다. 방금 자신이 판사로 근무한 법원앞에 전방을 차려놓고 한판 크게 먹으려고 뇌물준 판사이름까지 치부책에 적어가며 장삿길로 나선 것을 보면 그 범죄행각의 대담무쌍함이 백주대낮에 칼들고 은행 터는 영화 속의 갱을 보는 듯하여 할 말조차 잃을 지경이다.

이 나라 변호사법 제1조는 「변호사는 기본적 인권을 옹호하고 사회정의를 실현함을 사명으로 한다」고 천명하고 있다. 그래서 지난 군사독재와 권위주의 강권 통치하에서도 변호사들이 분연히 일어나 민주화에 앞장 섰고, 어려운 여건에서도 사법정의를 세우려고 고군분투하였다. 그런데 오늘에 와서 상황이 어떻게 바뀌었는지는 몰라도 변호사들이 과다수임료를 되돌려주는 창피스런 일들이 벌어지는가 하면, 현직 판·검사를 지내고 개업한 적지 않은 변호사들이 한번에 떼돈 번다는 유혹에 빠져 「전관예우」라는 범죄행위에 버젓이 빠져들고 있다. 돈에 걸신이 들렸거나 아니면 처음부터 「전관예우」를 노리고 판·검사의 길에 들어서지 않은 이상 어떻게 법률가가 이런 짓을 할 수 있는지 정말 이해하기 어렵다.

사건수임을 둘러싼 브로커의 알선 행각은 단순히 변호사 선임료를 인상시키고 약자를 알겨먹는 파렴치한 짓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다. 이보다 더 심각한 점은 법집행의 공정성과 사법기관의 청렴성이 뿌리부터 썩어들게 하여 국가기능을 마비시키는데 있다. 이번 사건에서도 보듯이 법조브로커의 문제는 법의 권위와 사법정의를 실현해야 할 일차적 임무를 지고 있는 일선 경찰, 검찰, 법원의 현직 공무원 등이 공범자로 되어 있는 것이다. 일부 공무원들이 이런 범죄행위를 무감각하게 자행하고 있는 것은 국가기관 내부에서 국가기능을 파괴하는 것이다. 여기에 문제의 고질적인 악성이 있다.

법조브로커를 척결한답시고 변호사만 두들겨서는 문제해결에 큰 효과를 거두기 어렵다. 경찰 검찰 법원 교도소 등 법집행 기관 내부의 종양도 함께 도려내야 한다. 이제 이런 각 기관의 수뇌부는 이 문제에 대해 용단을 내리고 그 척결의 의지를 국민 앞에 분명히 밝힐 때가 되었다. 대한변협도 변호사 다수배출시대에 걸맞게 변호사윤리, 징계제도를 정비하고 변호사자격 박탈제도를 입법화해야 할 것이다. 매년 1,000명의 변호사를 배출하는 시대로 접어드는 이 시점에서 종전과 같이 소규모 동질적공동체에 적용하는 윤리규범만으로 거대 법률가사회를 통제하려는 것은 적합하지 않다. 법학교육을 포함한 법률가양성 배출제도에 대한 전면적인 개혁을 추진하여야 함은 당연하다.

이번에 용기있는 변호사들이 전국적인 수사를 촉구하면서 개혁운동을 펼치고 검찰이 메스를 들기는 하였지만 곪은 부위와 종양의 핵을 정확히 진단하여 제때에 수술하지 못하면 부패의 중증에 걸린 이 나라가 기능마비로 썩어 문들어질 것은 불보듯 뻔하다. 선·후진국을 막론하고 경찰 검찰 법원 교도소 등의 직원이 사건알선의 대가를 챙기고, 「전관예우」의 미명하에 돈을 긁어 모으는 나라는 우리나라 밖에 없다. 더구나 이런 죄지은 자들이 자기들의 범행을 「관행」이라고 목청높일 정도라면 이미 상태는 중증중의 중증이다.

문제의 심각성이 이러하다면 국민 역시 이번 사건을 법조계만의 비리로 보아넘겨서는 안된다. 어떤 사건에서든 자기가 자신의 심판관이 될 수 없듯이 법조계의 고질적인 이런 악폐를 법조인들이 완전히 척결할 수 있다고 보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곪고 곪은 법조브로커의 범죄행위를 척결하는 데는 국민 모두가 일어서지 않으면 안된다. 여기서야말로 고발과 감시운동을 펼치는 대대적인 시민운동이 필요하다. 총체적 부패는 경제만 무너지게 하는 것이 아니라 결국에 국가 전체를 무너뜨리기 때문이다. 경제가 파탄지경에 이르렀을 뿐 아니라 부패로 나라가 내려앉는 소리도 도처에서 들린다.<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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