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가 10여년이상 근무해오던 LA타임스에 지난 10월초 돌연 사임의사를 밝혔을 때 상사와 동료들은 『왜 편하고 좋은 직장을 팽개치고 힘든 곳을 찾아가느냐』고 의아해하며 한결같이 말렸다. 그의 답변은 간단했다. 『바로 편하고 좋기때문에 떠난다』고. 『누구든 익숙한 일에 연연하면 발전과 활력소를 잃고 타성의 노예가 되는 것을 많이 봐왔다. 직장생활이 편안해지자 내 자신이 이같은 타성과 안일의 노예가 되어가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지금은 AP통신 워싱턴지국 사진부장으로 자리를 옮긴 강형원씨(34)가 11월초 LA한국일보와의 인터뷰에서 밝힌 내용이다(주간한국 1695호 참조). 13세때 도미, 대학에서 물리학 정치학 등을 섭렵하다 결국 「자유로운 사고(Free Thinking)와 창의성(Creativity)」을 두 힘으로 하는 저널리즘을 평생의 업으로 택했다는 그는 새로운 도전을 위해 다시 떠난다고 했다.
IMF가 한국경제의 법정관리절차를 착착 밟아나가는 요즘, 직장에서건 음식점에서건 차안에서건 두세사람만 모이면 울화통을 터뜨린다. 특히 최근 삼성과 한라중공업 등 대기업들이 우후죽순처럼 감량경영을 공언하고 나서자 『결국 경제적 약자들만 희생당하는 것 아니냐』며 실업 또는 물가공포를 피부로 느끼는 눈치들이다. 오만하고 무지했던 정치지도자와 관료집단, 방만했던 기업 및 금융권에 대한 원망과 책임추궁도 도처에 넘쳐난다.
또 APEC정상회의에 참석한 김영삼 대통령이 미국·일본 등의 정상들과 외환위기 타개책을 논의하는 사진에서 더할 나위없는 초라함을 맛보고, 대선에 나선 세 후보들이 서로 남탓하기 바쁜 장면에서 또 하나의 「타성」을 발견한다.
강씨의 얘기를 새삼 떠올리는 것은 이같은 우울한 풍경 때문이다. 따지고 보면 오늘의 「뒤엎어진 잔칫상」도 결국 관료집단과 재벌에 의해 가공된 우리경제의 타성과 허상에 모두가 안주한 결과라고도 할 수 있다. 하지만 어쨌든 우리는 증시지표에서 나타났듯 정확히 10년전으로 되돌아가 「고통과 내핍의 긴 터널」을 헤쳐나갈 수 밖에 없다. 지나친 과장이나 의도적 자위없이 「구제금융의 세계화」를 이룬 오늘을 있는 그대로 직시하며, 그리고 그 어려움을 초래한 책임을 따져 역사에 분명히 기록하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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