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가을 우리 영화계는 화려했다. 여러 도시에서 국제영화제가 열려 외국의 유명감독과 배우들이 부천과 부산, 제주 등으로 찾아와 분위기를 북돋웠고 국내관람객이 흘러넘쳤다. 한국이 순식간에 세계적 영화메카로 부상하는 듯한 축제분위기가 한철을 요란하게 수놓았다. ◆이제 잔치는 끝나고, 영화계는 내성의 시간을 갖고 있다. 최근 경주에서 열린 한국영화인협회 세미나에서 『국제영화제는 실익이 없었다』고 진단되었다. 영화인들은 축제를 쫓아다니느라 작품도 못 만들었다. 화제작·우수작도 없을 뿐더러 연말까지 총작품수가 50편을 넘지 못할 것으로 보인다. ◆그 경우 37편이었던 1957년 이후 40년만에 최악을 기록하게 된다. 우리 영화가 위기에 선 데는 대기업도 한몫을 한 것으로 분석되었다. 과다한 제작비와 높은 배우 출연료 외에, 수익에만 급급한 대기업의 영화사업이 문제로 지적되었다. 재벌기업이 제작비를 지원하며 영화사업에 끼여들기 시작한 것이 90년대 들어서이다. ◆당시 이에 대한 시각이 첨예하게 대립되었다. 예술의 논리와 돈의 논리가 양립할 수 있으며 보완효과를 가져올 것이라는 의견과, 이를 부정하는 견해로 양분됐었다. 결과적으로 이제 또 하나의 외화내허를 겪고 있는 것이다. 영화는 성급한 재벌기업이 기대했던 것만큼 돈에 비례해서 성공이 보장되지는 않는다. ◆한국영화가 회생하기 위해서는 영화인의 의식부터 프로정신으로 바뀌어야 하지만, 대기업의 자세 또한 달라져야 한다. 대기업이 기여하는 길은 단기간의 이익을 겨냥한 간섭이 아니고, 시나리오작가와 감독 배우의 상상력과 창의력을 자유롭게 풀어 주면서 우수한 설비를 제공하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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