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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어 세계화를 위하여/고소웅 연세대 교수(특별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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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어 세계화를 위하여/고소웅 연세대 교수(특별기고)

입력
1997.11.2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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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인에 한글교육 우리문화 세계보급 첩경/강사·교수법·교재개발 민관 함께 체계적으로세종대왕 탄신 600주년을 맞아 우리말과 글이 없었더라면 과연 어떻게 됐을까 하는 어리석은 생각을 해본다. 세계화에 대한 규정이 애매해서인지 영어나 일어를 배우는 것이 세계화라고 떠들어대는 사람들이 있다. 세계화는 한국어교육에서부터 시작되어야 하지 않을까.

연세대 언어연구교육원 한국어학당은 40여년간 90여개국에서 온 외국인 3만여명에게 우리말과 글을 가르쳤다. 학기마다 약 2,500명이 작은 건물에 모여 한글을 배우는 장면은 유엔총회를 방불케 한다.

이 학생들 가운데는 『장가 갔느냐』는 질문에 『장가 갔다왔다』고 대답하여 실소를 자아내는 사람도 있고 제법 속어까지 구사할 만큼 능숙한 사람도 있다. 이들을 통하여 우리말과 글은 물론이고 한국문화와 얼이 오늘도 지구촌 방방곳곳에 심어지고 퍼져나간다. 이 곳을 거쳐간 학생 한사람 한사람이 우리가 못하는 민간외교사절 노릇을 톡톡히 하고 있다. 이 정도라도 한국어가 자리잡은 것은 일선 학급에서 희생하고 봉사해온 선생님들의 덕분이다. 이 선생님들 한분 한분 모두에게 정부가 훈장을 달아준다고 해도 그 노고에 다 보답할 수 있을까.

한국어에 대한 정책 및 지원과 관련된 주무부서는 3개나 된다. 산하단체도 여럿이다. 한국어와 관련된 국내학회나 기타 외국단체 및 외국대학에 대한 배려는 과거에 비해 조금 나아졌다. 그러나 한국어 전문교육기관에 대한 국가적 배려는 세계화정책에도 불구하고 그늘 속에 가리워져 있어 안타깝기 이를데 없다.

21세기는 앞으로의 100년을 위한 비전이 아니라 새로운 1,000년을 바라보는 비전있는 국가와 국민에게 열려있다. 현대인은 생활의 기반인 경제 외에도 정신의 뿌리인 문화로 세계를 향한 경쟁과 도전에 응해야 한다.

때늦은 감은 있으나 연세대 한국어학당은 우리말과 문화를 꽃피우기 위해 세계 각국에 분교를 설립한다. 우선 12월8일 미국의 로스앤젤레스에 연세어학당을 설립, 세종대왕의 뜻을 펴고 21세기를 향한 모퉁잇돌이 되려고 한다. 우리나라의 세계화는 한국어와 우리문화를 외국인들에게 가르치는 일에서 시작하여야 한다. 그러나 급선무는 외국인들을 가르치는 우리의 선생님들을 교육시키는 일과 새로운 교수방법과 교재개발 등이다.

국내에는 한국어교육의 전통과 경험을 가진 교육기관이 여러개 있다. 그러나 세계적으로 볼 때 여러나라의 일선학급의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요즘 국내학원가에 무자격이나 수준미달의 영어강사가 들어와 사회문제가 되고 있으나, 이는 한국어강사의 경우에도 해당된다고 할 수 있다. 한국말을 한다고 다 외국인에게 한국어와 문화를 가르칠 수야 없지 않은가. 한국어를 체계적이고 바르게 가르칠 수 있는 선생님을 많이 배출하는 일이 매우 중요하다. 제2외국어로서의 한국어과정이 없지 않지만 보다 전문적이고 연구중심적인 기관이 어느때보다 절실히 요구된다.

한국어에 대한 연구물이나 전문성, 그리고 외국인에 대한 교수방법과 교재개발의 비법이 있다면 이것들은 어느 한 개인이나 대학 또는 학회의 전유물이 될 수 없다. 정부기관과 함께 민간단체 등이 적극적으로 나서야 할 때이다.

한글을 가르치는 사람은 세종대왕이 말씀하신대로 어리석은 백성을 불쌍히 여기는 마음가짐을 가져야 한다. 그래야만 『선생님 때문에 우리 아이가 한국어학교를 중도에 포기했다』는 미국 교포학생 학부모의 한숨섞인 탄식이 나오지 않는다. 또 『선생님께서는 저에게 너무 관심이 없는 것 같아요』라고 더듬거리며 말하는 파란눈의 여학생도 없을 것이다. 더욱이 『선생님이 일본학생에게는 친절하고 교포인 나에게는 한국사람이 한국어를 그렇게 못하느냐고 핀잔을 주었다』며 눈물 흘리는 학생도 사라질 것이다.

최근에 외국에서는 처음으로 한국어능력시험 또는 「SAT한국어시험」이 치러졌다고 한다. 그만큼 한국어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는 증거이다. 앞으로 각 분야에서 외국과 교류와 왕래가 많아지면서 한국어는 세계 주요어로 정착할 수도 있다. 중요한 외교관을 양성한다는 생각으로 한국어교육자들을 체계적으로 육성해야 한다. 필요할 때가 와서 후회하면 이미 늦는다.<연세어학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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