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라 파산 동냥다니는 일은 참을 수 없는 노릇/수험생의 마음으로 대선후보를 찾아보자”내일이 밝아 온다. 15대 대통령후보 등록일. 그동안 대권후보들의 분장한 얼굴을 지켜보며 인기를 저울질하는 사이에 경제는 벼랑끝으로 내몰리고 나라살림은 파산직전에까지 이르렀다.
추락하는 것엔 날개가 있다는데 과연 우리 경제는 이제 날개가 절단난 것일까.
기업들의 부도행진이 끝없이 이어지고, 금융기관은 50조원에 육박하는 부실채권을 안고 전전긍긍하고 있지 않은가. 젖먹이 아이를 포함해 국민 1인당 108만원을 내야 할 천문학적 액수다.
국민소득 1만달러, 세계경제 11위라는 숫자 놀음이 과연 무슨 의미가 있단 말인가. 그저 참담할 뿐이다.
차일피일 미봉책으로 일관하다 「특단의 조치」라는 것을 내놓았지만 약발이 먹히지 않는 것을 보면 보통 위급한 상황이 아닌게 분명한데 긴급수혈을 하지 않으면 자력회생이 어려운 환자―그게 바로 우리의 자화상이다.
국제통화기금(IMF)에 구제금융을 달라고 내민 손이 부끄럽고 죽기보다 자존심이 상하는 일인데 식량구걸하는 북한만이 측은하단 말인가.
지금 우리도 경제의 난시상황이다. 갑자기 6·25 직후로 돌아가는 느낌이다. 우리 모두가 명퇴, 조퇴를 당한 느낌이다. 피땀 흘려 쌓아 올린 공든 탑이 무너지고 폐허위에 헐벗고 서있는 느낌이다. 그런데도 우리의 지도자들은, 그리고 대권주자들은 권력만을 잡기 위해 못된 지혜를 짜내며 막바지 여론조사의 인기도라는 공허한 숫자놀음에만 매달려 있으니 한심한 노릇이다.
추운 거리로 내몰려 긴 겨울을 구호물자로 연명하던 6·25 때를 잊었단 말인가. 내가 언론에 몸담았던 자유당 말기는 배고픈 시절이었다. 겉으론 장기 독재와 부정부패가 빌미였지만 박정희 군사독재 18년, 어찌보면 우리들의 배고픔이 독재정권을 용납하고 방조해온 것은 아니었던가.
60년대의 워싱턴 특파원시절―. 그때 나는 세계가 움직이는 현장에서 민주주의가 국민에 무엇을 해줄 수 있는가를 전했고 남들 눈에 우리가 어떻게 비추어지고 있는가를 말했지만 우리는 그때 그런 소리에 귀를 기울이기엔 너무나 가난에 쪼들렸고 개발독재에 목을 걸다시피 했다.
나는 서슬퍼런 유신시절 10년간 TBC 앵커맨의 자리를 지키며 숨죽여 사는 사람들의 숨통이라도 열어보려 했다. 조금은 애교섞인 위트와 유머로 세상을 있는 그대로 얘기해 보려했다.
하지만 민주주의가 밥먹여 주느냐는 자조의 목소리가 우리에게 조건없는 인내를 강요했고 덜 먹고 덜 쓰고 더 많이 일하는데 누구도 군말이 없었다. 그리고 조금은 등 따습고 배부르게 됐을 무렵, 이른바 3김이 정치무대에 나타났다. 40대 기수론으로 이어지면서―.
70년대초 TBC TV 동서남북 시사토론에 「신민당」이란 주제로 김영삼 이철승 등 40대기수를 초청해 세찬 풍랑에 흔들리는 한국호의 앞날을 얘기했을 때 그들은 평화적인 정권교체만이 살 길이라고 했다.
박정희 대통령과 맞섰던 김대중씨는 억울하게 낙선한후 TV에 나오길 거부했고―. 그때부터 야당에 대한 탄압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였다.
그리고 찾아 온 80년의 봄. 언론통폐합과 더불어 3김시대도 일단은 종말을 고하는 듯 했다. 하지만 3김은 확실히 불사조였다. 30년이 흐른 지금까지 그들은 건재하다.그리고 지금 또 다른 40대 기수가 그때 3김이 그랬듯이 세대교체를 외치며 선거판에 뛰어 들었다.
3김과 3당합당, 그리고 분당과 합당을 거치며 이뤄낸 신 3자대결. 시대는 많이도 변했건만 우리 정치사엔 30년동안 변치않는 그 무엇이 있다.
올챙이 기자에서 대학교수까지. 별것도 아닌 인생을 살아오는 동안 나는 내일 대통령후보 등록에 나설 세 후보와 이래저래 기이한 인연을 갖게 되었다.
김대중 이회창 이인제 세 후보는 내가 추진중인 천주교 통일성전건립위원회 고문들이다. 그리고 그 40대 기수는 고교후배다. 그럼 나는 누굴 선택해야 하는가. 흔히 한국적인 것이라고 말하는 「정분」이나 「인연」의 끈에 얽매여 실패의 역사를 거듭할 순 없지 않은가.
정답이 떠오르지 않으면 역으로 분명한 오답을 하나씩 지워가는 수능 시험생의 마음으로 돌아가야지. 그러기 위해선 「기준과 원칙」을 스스로 세워야 한다. 배고픔이야 참을 수 있지만 나라 살림이 거덜나 또 다시 깡통차고 동냥하는 일은 참을 수가 없는 노릇 아닌가. 잘못된 과거는 추억속에 묻어 둘 수 있지만 다가오는 21세기의 꿈만은 포기할 수 없다.
우리가 선택하고 책임질 수 있는 「희망」이라는 미래의 빈 칸에 우리의 뜨거운 마음을 담아보자. 본래 오답은 눈에 잘 띄지 않는 법. 하지만 앞으로 20여일. 수험생의 마음으로 정답을 찾아 봐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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