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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 탓인가/김경희 여론독자부 차장(앞과 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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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 탓인가/김경희 여론독자부 차장(앞과 뒤)

입력
1997.11.2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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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일자 신문에서 「경제 국치일」이란 시커먼 활자를 본 많은 이들이 당혹감을 가졌을 것이다. 『왜 이 지경까지 왔나』라는 탄식에 이어 국민들은 『그러면 어떻게 되는 것이냐』는 공포를 느꼈을 것이다.순진한 이들은 얼마전 백화점에서 외제 넥타이 산 일을 자책했을 것이고 또 어떤 이들은 큰 맘 먹고 다녀온 지난 여름의 동남아여행에 자괴감을 느꼈을 것이다. 그리고 옷장안에서 여행에서 남겨온 달러 지폐 몇장과 동전을 꺼내들고 은행문이 열리기를 기다렸을지도 모른다. 그들은 빚쟁이 주제에 분에 넘는 호사를 해 온 것이 아닌가 스스로를 돌아 보았을 것이다.

정부가 이렇게 평범한 국민을 죄인으로 몰아가도 되는 것인가. 정부는 지난해 이때쯤 우리가 선진국 클럽인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가입하게 됐다며 한껏 기분을 냈다. 그리고 1인당 국민소득 1만달러시대에 접어들었다며 국민을 무장해제시켰다. 모두들 조금씩 나사가 풀렸던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국가가 법정관리를 받아야 할만큼, 부도직전의 삼류국가로 내몰릴만큼 국민들이 잘못하지는 않았다고 생각한다.

경제위기다, 외환위기다 언론에서는 떠들어댔지만 정부의 책임있는 누구도 나서서 우리가 처한 위기의 심각성을 설명하지 않았다. 아직은 경제 여건이 건실하다며 오히려 상황을 호도했다. 대통령도 22일 발표한 대국민담화에서 국가를 이 지경에 이르게 한데 대해 사죄한다면서도 정작 정책의 실패를 자인하기보다 경제를 둘러싼 국제환경과 체질 타령만 했다.

우리는 대통령의 사과나 유감표명에는 너무나 익숙하다. 정작 국민이 원하는 것은 숱하게 들어온 막연한 사죄가 아니다. 구체적으로 정부가 어떤 오판을 했고 누구때문에, 어떤 정책의 실패때문에 이리 됐는지 분명히 하라는 것이다. 또 국민은 앞으로 무엇을 어떻게 해야 나라에 도움이 되는지를 구체적으로 듣고 싶다. 내년에는 얼마나 많은 실업자가 발생하며 어느 정도의 물가상승이 예상되는지, 얼마만큼의 고통을 감내해야 하는지도 소상히 알고 싶어 한다.

또 해외여행만 안 가면, 외제옷과 외제 화장품만 안 사면, 장롱속의 달러만 긁어 모으면 이 수치스러운 법정관리국의 처지에서 벗어날 수 있는지 듣고 싶은 것이다. 무턱대고 국민을 죄인으로 몰아가서는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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