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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져가는 것을 위하여/김춘수 시인(아침을 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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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져가는 것을 위하여/김춘수 시인(아침을 열며)

입력
1997.11.2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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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져 가는 것들이 있다. 얼른 생각나는 것 중에 토종 고구마가 있다. 토종 고구마는 신강, 구강 두 종류로 나뉜다. 신강은 가늘고 길쯤하다. 살갗의 빛깔이 밝은 브라운이다. 너무 알이 차서 진이 까맣게 밖(껍질)으로 새난 것도 있다. 맛은 잘익은 밤과 흡사하다. 구강은 크기가 주먹만하다. 울퉁불퉁하게 못생겼다. 껍질도 매끈하지 않다. 그러나 토실토실하게 살이 쪄있어 보기만 해도 먹음직스럽다. 구강은 신강과는 또 다른, 그러나 신강에 못지않은 맛을 지니고 있다. 조금 퍼석한 느낌이다. 이런 따위 신강이건 구강이건 요즘은 거의 눈에 띄지 않는다. 멸종을 하지 않았나 싶다. 몹시 아쉽고 그것들이 문득 생각나는 때가 있다.해방 직후 우리가 배고픈 세월을 지겹게 보내고 있었을 때 관에서 일본의 오키나와산 고구마를 심도록 권장한 일이 있었다. 덩치가 큰 무만하다. 양을 늘이기 위한 방책이다. 식량증산을 위한 것이었지만 결국은 양이 질을 내쫓고만 꼴이 되고 말았다. 그러나 먹고살만 해지자 양보다는 질을 찾게 되었다. 토종 고구마의 그 맛이 새삼 그리워진다. 신토불이란 말을 곧잘 하지만 우리의 농축산물이 상당수는 순종을 잃어가고 있다. 오키나와산 고구마가 우리땅에서 생산된다고 우리 고구마라고 할 수 있을까. 그것은 우리 입에는 맞지 않는 물고구마다.

경상도쪽에서는 동이감이라는 감이 연다. 물동이만 하다고 해서 그런 이름이 붙게 되었는지도 모른다. 하여간에 보통 감의 서너배는 된다. 홍시감이다. 잘 간수해 두었다가 겨울에 먹으면 단맛이 한결 더해진다. 북쪽 사람들이 겨울밤에 냉면을 곧잘 먹는다는데 그 정취와 비길만하다. 온돌방의 건조한 공기가 가시어지는 듯한 느낌이 되고 목구멍이 한결 시원해진다. 꿀맛이란 말이 있는데 겨울밤에 먹는 동이감의 맛이 바로 그 맛이리라.

요즘은 경상도의 어디에서도 이 동이감을 볼 수 없게 되었다. 다수확의 개량종에 밀려서 이 또한 멸종이 되지 않았나 싶다. 돼지도 그렇고 소도 그렇게 되어가는 것이 아닌가 적이 걱정스럽다. 체구는 작지만 윤나는 털을 가진 토종돼지 또한 멸종상태에 있지않나 싶다. 요즘 우리가 먹고 있는 돼지고기의 맛은 토종돼지를 먹어본 사람의 입에는 그건 돼지고기라고 할 수도 없을 정도로 무심심한 맛이다. 맛이라고도 할 수 없다. 갈매기살이니 무슨 살이니 하고들 있지만 우리 토종돼지의 젖무덤살이나 허벅지살의 맛에 비하면 그건 아무것도 아니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 내 입에는 군침이 다 괸다.

수산물만 해도 그렇다. 우선 들 수 있는 것은 대구와 조기다. 대구는 남쪽바다에서 나는 것이 동해에서 나는 것보다 월등히 맛이 낫다. 체구는 작으나 오동통하니 맵시가 돋보인다. 무를 썰어넣고 국을 끓이면 시원하기 그지없다. 갈비살에 된장을 넉넉히 발라 찜을 하면 또한 일미의 요리가 된다. 대구는 도미와 함께 머리쪽이 맛이 좋다. 참도미, 밥상에 오르면 밥상을 그득 채우던 그 의젓한 모습을 이제는 볼 수가 없다. 여름이면 집집마다 가마니로 굴비를 장만해 놓고 겨울이 다 가도록 구워먹고 지져먹고 하던 그 알배기 살찐 조기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마포는 여름 한철 조기 나르는 배들로 강을 메우곤 했다. 지금은 참조기 보기가 쌀에 미를 보는 듯하다.

맛을 잃는다는 것은 사는 재미의 한 부분을 잃는 것이 된다. 맛은 사치와는 다르다. 그것은 건전한 즐거움의 하나다. 이런따위 맛의 즐거움을 우리는 자꾸 잃어가고만 있다.

그리고 또 다음과 같은 경우는 어떨까. 설빔은 전에는 어머니가 손수 만들어주셨다. 아이들의 설빔을 장만할 때 빚어지는 정경이 있다. 그것은 독특한 정서를 또한 만든다. 초등학교를 마치고 집에 오면 구들목에 자리를 잡은 어머니가 인두질을 하고 있다. 섬세하게 인두가 길을 더듬어간다. 어머니 입에서는 무슨 노랠까, 구슬픈 가락이 새나온다. 침모할머니가 곁에서 바느질을 한다. 화로에 재가 수북이 쌓인다. 밤이 묻혀있다. 밤이 소리를 내며 튄다. 『아뿔싸!』하며 어머니나 침모할머니가 소리를 지른다. 어머니는 인두질을 그만두고 침모할머니는 바느질 손을 놓고 잘 구워진 밤을 깬다. 이야기꽃을 피운다. 무슨 이야기가 그리도 많은지…. 어머니가 밤 한톨을 까서 내입에 넣어준다. 왠지 마음이 푸짐해지고 엷은 졸음에 시달리게 된다.

요즘은 이런 일이 없다. 설빔은 전방에서 사서 입힌다. 아이들은 설빔에 서린 어머니의 정성과 애정을 못 느낀다. 좋은 세상이지만 삭막한 세상이 되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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