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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책여약(김성우 에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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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책여약(김성우 에세이)

입력
1997.11.2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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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선거가 한달도 채 남지 않았다. 이제 유권자들로서는 선택의 기준을 정리할 때가 되었다. 대통령을 고르는데는 후보 개인의 인물됨, 소속 정당에 대한 선호, 내거는 정강정책 등이 좌우하는 것으로 되어있다. 이 가운데 그동안 인물은 어느 만큼 부각되었고 정당은 통합·연대·창당 등으로 재정비가 일단 끝났으니 남은 법정선거기간동안 저마다의 정책과 공약들이 쏟아져나와 싸움을 벌일 판이다.지금까지의 선거 전초전은 비방과 음해와 폭로끼리의 싸움이었다. 정정당당히 정책대결을 하라는 소리가 높았다. 선거에서 정책대결이야 당연한 것이지만 이번 대선에서 그것이 어떤 의미가 있는지를 생각해보고 싶어진다.

우선 정책이나 공약의 신뢰성 문제가 있다. 선거때만 되면 실현성 없는 공약의 나열은 우리나라에서 이골이 나 있다. 멀리 갈 것도 없이 지난번 대선때의 「신한국창조」 공약이 현정권에서 얼마만큼 실현되었는가를 살펴보면 된다.

그래도 선거 공약을 믿고 보려면 무엇보다도 후보자의 인간적인 신뢰성에 기대지 않을 수 없다. 대통령이 될 사람이 필요한 많은 자질 중에 정직성등의 도덕성을 가장 따지는 것도 이것이 그 이유중의 하나다. 지금까지의 각후보들의 행태로 보아 공약을 다 지킬만큼 신실한 사람이 누구누구인가.

각 정당의 처지를 둘러보면 더욱 마음이 안놓인다.

먼저 신한국당과 민주당이 통합한 한나라당. 한나라당은 아무래도 구신한국당이 모체일 수밖에 없다면 지금 여당인가 야당인가. 적어도 야당일 수 없다면 김영삼정권의 국정에 책임이 있는가 없는가. 14대 대선에서 내건 공약들이 이행되지 않은 것을 김대통령 개인의 잘못으로만 돌린다면 너무나 무책임한 정당이다. 그런 무책임한 정당에 다시 책임을 맡길 수 없다. 대통령이 탈당했다고 해서, 다른 정당과 합당했다고 해서, 집권당으로서의 책임을 회피하려고 한다면 앞으로 모든 집권당은 실정을 했을 때 다음 선거를 앞두고 합당하고 개명해 버리면 그만이란 말이 된다. 선거란 언제나 그 전번 선거결과에 대한 심판이다. 선거판이 아무리 「개판」이기로서니 국민들은 아무데도 책임을 물을 데 없이 닭 쫓던 개처럼 지붕위의 허공만 올려다보고 있으란 말인가. 이런 정당이 이번 대선에서 무슨 번지르르한 공약을 내세운들 국민들이 어떻게 믿겠는가. 한나라당으로서는 집권당을 자처하지 않아도 무책임하고 자처하면 더욱 책임을 져야하는 딱한 입장에서 믿거나 말거나한 공약을 내놓게 되어 있다.

국민회의나 국민신당은 다른 측면에서 또 미덥지 않다.

각 후보의 정견을 들으면 대통령이 전능자인 것 같지만 국회의 동의없이 이행될 수 있는 공약은 많지 않다. 지금 국회의 의석분포는 국민신당은 말할 것도 없고 DJT연대도 과반수에 훨씬 미달이다. 이들이 집권에 성공한다면 여소야대의 국회에서 어떻게 그 공약들을 다 지키겠다는 것인지 해명이 필요하다. 대통령에 당선되면 의석분포에 변화가 있을 것에 희망을 건다지만 그런 막연한 정치공작의 기대에 그 많은 공약들이 대롱대롱 매달려 있어도 괜찮은 것인가. 더구나 원내교섭단체도 구성하지 못하고 있는 국민신당의 경우는 무슨 개벽으로 당장 과반수를 채우겠다는 것인지 곁에서 보기에도 막막하다. 다음 총선은 새 대통령의 임기가 절반가량 지난 뒤다.

국민회의의 경우는 또 다른 문제가 있다. 선거에서 승리하고 약속대로 내각책임제까지 통과시켰다 치자. 다음 총선에서 DJT연대가 반드시 승리한다는 보장이 없다. 여기서 패배하면 허수아비 대통령만 남고 정권은 넘어간다. 무슨 수로 이번 선거의 공약을 끝까지 보장하겠다는 것인가.

물론 여소야대로 대통령의 소속 정당과 국회의 다수당이 서로 다른 소위 분할정부(Divided Government)나 동거정부(Cohabitation)는 미국이나 프랑스같은 대통령제의 나라에서는 가끔 있는 일이다. 그러나 이때마다 민주정치의 전통이 깊은 이들나라에서도 많은 정치적 마찰과 정체를 겪어왔다. 그래서 프랑스에서는 대통령에게 의회해산권행사로 새의회 구성의 기회를 준다. 미국에서는 대통령과 의원선거의 동일정당 투표제가 제안되기도 하지만, 의원들이 양식이 있고 또 양대당에는 각각 어느 만큼의 보수주의자와 자유주의자가 있어서 전면적인 대립을 막아준다.

우리나라에서는 여소야대의 전례가 드문데다가 제13대 국회의 여소야대때 3당합당까지 한 경험으로 미루어 슬기로운 극복을 기대하기가 어렵다.

이래서 각 정당의 미사여구로 장식된 정책이나 공약들은 대선에서 승리하더라도 미책여약으로 그칠 우려가 많다.<본사 논설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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