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잇단 부도·금융부실에도 안일한 대처/시장마비사태에 미 등 IMF행 종용/20일 심야회의후 청와대보고서 “결정”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가입 1주년(국회 비준일)을 불과 5일 앞둔 21일 밤 세종로 정부종합청사 19층 대회의실. 취임 이틀째인 임창렬 부총리 겸 재정경제원장관은 비장한 어조로 『국제통화기금(IMF)에 자금지원을 요청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선진국 문턱에 들어선지 1년도 안돼 국제통화기금(IMF)의 「신탁통치」를 받게 된 것이다.
IMF 구제금융 신청은 막판까지 우여곡절을 겪었다. 임부총리는 이날 하오 3시 『2∼3일내에 (구제금융) 신청여부를 결정하겠다』고 말했다. 그러나 3시간뒤 공보관은 『부총리가 밤 10시 IMF와 관련해 설명할 예정』이라고 기자들에게 알렸다. 김영삼 대통령의 이날 저녁 주요 정당 총재들과의 만찬, 22일의 대국민 특별담화 등과 관련, 『대선 후보들에게 동의를 구한 것 아니냐』는 기자들의 질문에 재경원측은 부인하지 않았다.
강경식 전 부총리는 한보 삼미 부도를 전후해 금융대란설이 제기되는 가운데 금융위기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금융연구원의 보고를 일축했다. 「FUNDAMENTAL」(기초여건)이 좋다는 게 이유였다. 진로 대농 한신공영 기아까지 무너지면서 금융기관들의 부실채권은 20조원을 넘어섰다. 이 무렵(7월) 미국의 신용평가기관인 무디스사는 산업은행 등 국책은행의 자금차입전망을 부정적으로 평가했다. 그런데도 경제팀은 『구조조정에 따른 고통은 감내해야 한다』며 3개월간 기아문제를 방치했고, 무디스사는 국가신용도를 하향조정했다. 이후 환율은 개장되자 마자 상한폭으로 올라 거래가 중단되고 주가는 외국투자자들의 순매도공세로 붕락을 거듭했다. 다급해진 경제팀은 대책을 쏟아냈지만 그 때마다 『실기했다』는 지적을 받았다.
정부 당국이 IMF쪽으로 눈을 돌리게 된 것은 이달 들어서다. 금융기관의 극심한 해외차입난으로 금융시장이 사실상 마비됐기 때문이다. 『한국이 IMF나 외국에 긴급자금지원을 할 지 모른다』는 미국 불룸버그통신의 보도(6일)를 전후해 금융전문가들이나 외국투자자들이 IMF 행을 권유 또는 종용하기 시작했다. 정부 당국자는 『재경원 실무자들도 강부총리에게 「특단의 대책을 마련하지 않는한 IMF 구제금융이 불가피하다」고 건의한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외국언론 등이 한국을 흔들고 있다』는 재경원측의 공식부인에도 불구하고 IMF 구제금융신청여부에 대한 검토작업이 이뤄졌다는 얘기다.
이때 재경원 내부에서는 『IMF에 지원을 요청하는 것은 경제주권을 포기하는 것인데다 OECD에 가입한지 1년도 안됐다』 『재정을 동원해서라도 부실채권을 정리하고 금융기관에 대한 수술에 착수하지 않는 한 불가피하다』 등으로 논란이 많았다는 후문이다. 청와대에서는 미국 일본 등을 통한 차입으로 해결해 보자는 결론을 내린 것으로 전해졌다.
미국은 15일 『재무부를 중심으로 한국의 금융상황을 지켜보고 있다』는 논평을 냈으며, 일본의 아시아통화기금 창설움직임에 대해서는 『IMF를 통하는 게 바람직하다』는 식으로 분위기를 몰아갔다. 김인호 전 청와대경제수석은 17일 처음으로 『IMF 구제금융을 배제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재경원 관리들도 『아직 그 단계까지 가지 않았다』는 완곡한 표현을 썼지만 부인하지 않았다. 19일 부실금융기관 강제통폐합 등을 골자로 한 대책이 발표됐지만 효과가 없었다.
피셔 IMF부총재는 20일 전격 방한, IMF 구제금융 신청이 현실화했다. 피셔 부총재는 임부총리와의 두차례 면담에서 『「2백억달러」 카드를 내밀며 필요하면 언제든 요청하라』고 말했다. 종용인 셈이다. 재경원은 20일 밤 2시간 30분간의 심야대책회의에서 「IMF행 불가피」로 결정, 이날 새벽 청와대에 보고했다.<정희경 기자>정희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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