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국가·기업 모두 상호신뢰 회복과 ‘내탓이오’ 마음자세로 고통분담에 앞장서야요사이 아침에 눈뜨기가 두렵다. 오늘은 또 얼마나 환율이 치솟고 주가가 곤두박질칠 것인가. 어떤 기업들이 자금난으로 문을 닫을 수 밖에 없다는 소식을 듣게 될 것인가.
조금 있는 여유자금을 금융기관에 맡겨둔 국민은 금융기관의 M&A(인수·합병)소식에 잠을 설칠 수 밖에 없다. 내일은 조금 나아질지도 모른다는 희망이 정치판의 이전투구를 보고나면 씁쓸한 자조를 지나 분노로 바뀔 뿐이다.
외화차입이 끊기고 외환시장이 마비상태에 이르는 등 우리경제가 위기상황에 처해 있음을 부인할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국제금융분석가들이 진작부터 한국경제의 심각성을 언급했지만 정부는 현실을 외면한 낙관론을 유지함으로써 위기관리능력의 한계를 보였다.
19일 새 재경원장관과 통산부장관, 경제수석이 임명되었다. 그러나 국내외적 신뢰를 바탕으로 현 경제위기를 타개하기 위해 어려운 결단과 과감한 정책을 추진하기에는 역부족인 것 같다.
지금의 경제난국이 정부의 책임만은 아니다. 차입관행에 의존하여 수익성보다는 중복투자에 치중해온 기업들, 생산성보다 높은 임금을 요구해온 근로자들, 개방화와 더불어 분수없이 흥청거리며 소비해온 소비자들에게도 그 책임이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정부의 잘못만을 질책하며 정부가 알아서 할 일이라고 미루어 놓을 수는 없다. 이러한 점에서 최근 시민단체들이 소액달러 환전, 해외여행 자제, 사치성소비재 수입억제 등을 통한 경제살리기운동에 적극 나선 것은 뜻있는 일이라고 할 수 있다.
당면한 경제위기를 극복하고 다가오는 변혁의 21세기에 대응하기 위한 우리의 자세는 어떠해야 하는가. 첫째, 의식의 개혁이 있어야 한다. 무한경쟁시대에 살아남기 위해서는 시장경제를 이해하고 철저한 시장원리에 의한 경제운영을 받아들여야 한다. 오르기만 하던 임금, 자산가격상승에 의한 부의 축적 등 고성장·고물가구조의 이득을 포기하고 떡값, 비자금과 같은 비효율적인 관행이 사라지도록 해야한다. 시장기능의 유연성으로 인한 실업과 임금의 하락이라는 고통을 감내할 각오를 다져야 한다. 이러한 고통 분담하에서만 새로운 고용이 창출될 수 있기 때문이다. 개발경제시대의 기득권을 포기하고 신축적이고 효율적인 경제의 틀을 짜는데 경제주체들이 동참해야 한다.
둘째, 생활의 경제화를 이루어야 한다. 환율 상승은 떠들썩하던 소득 1만달러시대를 무색하게 만들었다. 언제부터인가 우리의 소비생활에는 원칙이 없다. 남이 사면 사야 되고 비싸면 더 사려고 한다. 저소득층의 실망과 좌절감에 의한 소비, 중산층의 모방과 선망에 의한 소비, 고소득층의 과시에 의한 소비, 그 이유는 다 있지만 어느 것 하나도 합리적인 소비에는 해당되지 않는다. 이제는 못살던 시절 한풀이하느라 무조건 사대는 천박한 자본주의 소비에서 벗어나 주어진 소득에서 필요에 의해 분수껏하는 소비의식이 필요하다.
임금이 선진국과 비슷한데도 우리의 삶의 질이 낮은 것은 불합리한 생활관습 때문이다. 과다한 경조금 접대비 외식비 과외비 등의 지출을 합리화한다면 현재의 임금으로도 삶의 질은 높아질 것이다.
셋째, 절약정신을 다시 새겨야 한다. 요즘 아이들은 절약이란 말의 의미를 잘 모른다. 왜냐하면 가정이나 학교에서 절약하는 행동을 잘 볼 수 없기 때문이다. 고성장시대의 거품은 우리의 절약정신을 희석시키고 절약이 마치 가난한 나라의 전유물처럼 여겨지게 하였다. 그러나 우리가 열악한 여건속에서 이 만큼의 경제성장을 이룩한 것은 다름 아닌 허리띠를 졸라매는 「절약」 덕분이었다. 이제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는 마음으로 쓰고 싶은 것, 사고 싶은 것을 한번 더 생각하여 절약하는 지혜가 필요한 때이다. 경제위기의 극복과 더 나은 미래는 바로 절약에서 출발하기 때문이다.
위기에 대한 국민적 공감에도 불구하고 문제해결에 있어 국민적 역량이 제대로 발휘되지 못하는 것은 전환기경제의 운영매카니즘의 부재에 있다고 할 수 있다.
정부는 고통의 분담에 대한 갈등과 이에 따른 경제주체간의 신뢰성을 회복하도록 노력해야 하고 국민은 금융시장의 개방정도가 미미한데도 불구하고 외국인의 동향에 너무 민감하게 반응하여 부화뇌동하는 일을 자제해야 한다. 그리고 이제는 정부는 실패의 대가를 국민에게 떠 안기고, 국민은 책임을 전적으로 정부에게만 묻는 구습을 되풀이하지 말고 각자 처한 입장에서 경제와 금융시장 안정에 일조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가를 생각해야할 때이다.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