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 소련시절 민주광장으로 일컬어졌던 마네즈광장을 사이에 두고 크렘린과 마주보고 있는 러시아의 국가두마(하원)는 늘 시장터같은 활기로 넘쳐난다. 「말없는 거수기」라고 불렸던 과거를 보상이나 받으려는 듯 논쟁과 소란, 떠들썩함이 끊이지 않는 「말많은 의사당」으로 변했다. 무서운 중압감이 느껴지는 크렘린이나 벨로이 돔(정부종합청사)과는 완전히 다른 분위기다.얼마전 국가두마에서는 사흘동안 정치 희화전이 열렸다. 민족주의 색채의 자민당(당수 지리노프스키) 후원으로 개최된 이 전시회에는 러시아 정치판을 조잡스럽게 극화한 그림 10여점이 내걸려 의원과 보좌관, 방문객의 눈길을 끌었다.
자민당 후원답게 민주계 개혁인사는 서방의 주구로, 민족주의자들은 조국의 수호자로 묘사돼 일부 인사들은 눈살을 찌푸리기도 했다. 예컨대 보리스 옐친 대통령의 집권초기. 시장경제 정책을 도입했던 예고르 가이다르 전 총리대행(민주선택당 당수)는 각종 성기로 가득찬 섹스 숍에서 활짝 웃고있는 모습으로, 흑해 함대의 우크라이나 이양을 반대한 유리 리즈코프 시장은 흑해의 세바스토폴기지를 방어하는 러시아 수비대로 그려졌다.
또 「사유화의 황제」인 아나톨리 추바이스 제1부총리는 10월 혁명후 농민의 식량을 강제징발했던 소비에트 병사이면서 촌장(옐친 대통령)의 딸 타냐 디야첸코와 정을 나누는, 「권력과 부」를 동시에 탐하는 인간으로 묘사됐다. 여성 인권운동가 노보드보르스카야와 그의 동료 보로보이가 러시아의 처녀 가슴으로 만든 고기를 뜯고있는 그림은 섬뜩하리만큼 독설에 가득찬 작가의 반서방 노선을 보여준다.
그러나 작가인 이고르 비스트로프는 당당하다. 다양한 인간들이 모여 죽고 죽이는 정치판이 너무 재미있어 극화하게 됐다고 말한다. 이 작가는 과연 대선을 앞둔 우리의 정치판을 어떻게 그릴까. 네마리의 악어(미국 러시아 중국 일본)가 입을 벌리고 있는 절대절명의 순간에도 조그만 빵조각을 놓고 다투는 물고기 세마리를 그리지는 않을른지.<모스크바>모스크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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