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 시가가 대유행이다. 미 전역으로 담배 규제 분위기가 확산되고 있는 현상에 비춰볼때 대단한 아이러니이다. 요즘 유행마다 편리하게 갖다 붙이는 복고풍 향수로만 설명하기에는 어딘가 미흡할 정도이다. 흡연이 허용되는 장소마다 시가를 꺼내 무는 장면이 심심치 않게 목격되고, 심지어 애연층도 남녀노소가 따로없어 새파란 처녀가 시가를 입에 물어도 전혀 어색해하지 않는다.맨해튼의 한 일식집에서 시가를 문 손님에게 물었다. 왜 피우냐고. 그의 대답에서 궁금증의 일단이 풀렸다. 『(마음의) 여유를 즐길 수 있다』는 것이었다. 사실 미국인에게 시가는 축하와 성공을 표현하는 상징적 의미가 있다. 아들을 낳았을 때 친지들에게 시가를 돌리고 일처리를 매끄럽게 마무리했을 때 시가를 꺼내 문다. 내뿜는 짙은 연기에는 성취에 대한 포만감이 가득 배어 있다.
사회 전반에 걸친 시가의 대유행은 드높아진 미국의 자긍심과 무관하지 않은듯 싶다. 안으로 연속적인 경제의 활황세가 이어지고 밖으로는 세계 단일 초강대국으로서의 위상을 확고히 굳힌 자신감의 발로이다. 지난달 뉴욕 증시 사상 최대의 낙차폭을 기록한 「블러디 먼데이」때도 『우리 경제는 탄탄하다』는 빌 클린턴 미 대통령의 말 한마디에 주가가 반전, 평상으로 되돌아갔다. 한때 경외의 대상이던 일본에 대해서도 이제는 상대적 우월감으로 가득 차있다. 아시아권의 금융파동때 엔화의 대달러화 약세에 대해 일본측에 우려를 전달하는 미 행정부의 말투는 꼭 아우를 타이르는 형을 연상케 했다. 나라 전체에 넘치는 긍지와 활력이 다시 역동성으로 살아나고 있는 것이다.
이에 비해 우리는 어떤가. 월 스트리트 저널은 18일 한국 경제에 대한 신뢰부족이 이번 금융위기를 촉발했다고 분석하면서 그 원인의 하나로 금융개혁 법안을 둘러싼 관료간의 의견 대립을 들었다. 한 외신은 이제 한국이 자력회생에 대한 자신감을 상실한 것 같다고 진단했다. 나락에 처한 경제상황에 초조히 줄담배를 피워댈 우리의 초라한 자화상이 느긋이 시가를 빼어 문 미국인의 모습에 자꾸만 오버랩된다.<뉴욕>뉴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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