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겨울이다. 나라 안팎에서 몰아닥친 경제한파는 서민의 가슴을 벌써부터 꽁꽁 얼어붙게 하고 있다. 미래는 거의 실종됐다. 한치 앞을 내다보기 힘들다는 게 실감난다. 이 와중에도 고통은 불평등해서 월급쟁이와 중소제조업자층의 고역이 크다. 월급쟁이는 명퇴와 실직에 시달려왔고 중소제조업자는 부도에 떨었다. 자리를 지킨 월급쟁이마저 봉급은 오르지 않는데 물가만 뛰어 꼼짝없이 월급봉투가 얇아지는 것을 감수해야 했다.나라 경제가 국제통화기금(IMF)의 법정관리를 받느냐 마느냐는 기로에 서 있는 상황에서도 일부 고급 소비계층의 행태는 변함없다. 고급 외제차와 고가 보석, 호화 여행 등으로 광내기에 바쁘다.
지금은 역사적 심판을 받은 5공 정권이지만 감옥안의 전두환 전대통령은 권좌에 있을 당시 외환위기를 해결하기 위해 일본으로가 40억달러의 차관을 얻었다. 지금의 위기는 장관이나 한은총재가 나서는 실무급 접촉이 아니라 국제정치적인 협상과 담판이 절실한 시점이다. 그런데도 움직임은 없다.
97년 겨울의 이런 절망과 허황은 92년 투표에 나선 주권자들의 선택에 뿌리를 두고 있다. 선거 따로, 지금의 위기 따로, 또 우리의 살림살이 따로가 아니다. 92년 선택이후 5년간 침몰해왔다. 「우리의 선택」이 정치권력의 정책방향성 상실과 권력행사의 부작용을 거쳐 「대위기」로 이어진 것이다.
이 겨울에 또하나의 선택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작은 한표이지만 그 선택의 가공할 위력을 우리는 바로 지금 보고 있다. 지역사람을 뽑겠다는 「지역표」나 실속없는 인기만을 의식하는 「정치표」는 나라를 멍들게 하고 주권자 개인의 살림살이를 망친다. 최근 이인제후보의 독도방문은 기개나 자존심이라기보다 비현실적인 「인기몰이」의 대표적인 예에 해당한다.
지금과 같은 위기를 한발 앞서 간파하고 두팔을 걷어붙인 채 직접 나설 사람, 말레이시아의 마하티르 총리가 미국에 가서도 정작 클린턴 대통령은 만나지 않고 정보산업 유치를 위해 실리콘밸리만을 들렀다가 돌아간 것처럼 실속있는 줏대를 보여줄 사람, 국민감정보다는 국민 살림살이를 채워주는 사람을 우리는 골라야 한다. 우리 자신을 위해.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