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측 구체적 액수 등 거론한듯/IMF선 고강도 자구노력 요구/미 “지연땐 위기 세계 확산” 압박국제통화기금(IMF)과 미국 재무부, 미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의 고위관계자가 20일 대거 방한하는 등 우리나라 금융위기를 둘러싼 국제적 움직임이 긴박하게 돌아가고 있다.
이날 홍콩에서 돌연 방한한 스탠리 피셔 IMF 부총재는 임창렬 경제부총리와 박영철 비상경제대책자문위원(금융연구원장) 등 우리측 고위관계자와 만나 구제금융의 지원규모와 세부조건 등에 대해 논의했다. 박위원은 이날 피셔 부총재가 전달한 IMF의 입장을 한국정부에 전달한뒤 21일 아침 한국정부의 공식입장을 가지고 이날 하오 한국을 떠나는 피셔 부총재를 다시 만나기로 한 것으로 전해졌다.
또한 티모시 가이드너 미국 재무부 국제금융담당 차관보, FRB 테드 트루먼 국제금융과장 등도 한국이 IMF에 구제금융을 요청하는 방안에 깊은 관심을 두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피셔 부총재의 방한이 우리측 요청인지 아니면 IMF의 자체판단에 따른 것인지는 아직 밝혀지지 않고 있지만, 방한 및 우리측 고위 관계자와의 만남 그 자체가 큰 의미를 가지고 있다고 관계자들은 보고 있다. 한국정부는 탐탁치않게 생각하고 있지만 IMF 구제금융을 둘러싼 양측간 협의가 시작됐다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이날 협의에서 우리 측은 구제금융에 대해 구체적 액수 등을 거론했으며 피셔 부총재는 이에 대해 한국 금융기관의 강도 높은 자구노력 실행을 요구했다고 알려진 것도 이런 점을 뒷받침하고 있다.
특히 가이드너 차관보가 부총리, 한은총재 등을 공개리에 만난 것과는 달리 피셔 부총재는 비공개리에 방한해 우리측 고위 관계자를 만났다는 점도 한국의 IMF 구제금융 신청이 심도있게 진행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관계자들은 해석하고 있다. 미국은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서라도 한국이 IMF 구제금융을 신청하는 외에 별 도리가 없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미국의 입장에선 한국이 미국에 직접 손을 벌리기보다는 국제기구인 IMF의 지원을 받는 쪽이 경제적으로 부담이 적은데다 한국정부가 IMF에 긴급자금을 조기에 요청할 경우 한국의 금융위기가 일본 등 세계로 확산되는 것을 막을 수 있는 계산이 서 있다는 것이다. 실제 미국의 유력 일간지인 뉴욕타임스도 최근 한국이 IMF에 구제금융을 요청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며 미국쪽의 이같은 시각을 대변했다.
이에 비해 임창렬 부총리 겸 재정경제원장관 등 한국정부 관계자는 구제금융을 배제하지는 않고 있으나, 현단계에선 구제금융을 요청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는 입장을 유지하고 있다. 지난 19일 발표한 정부의 금융시장 안정대책을 토대로 해외에서 외화를 적극적으로 조달하고 금융산업에 대한 대대적인 구조조정작업을 벌이면 금융위기를 극복할 수 있을 것이라는 점을 재차 강조하고 있다.
이에 따라 정부는 이날 방한한 가이드너 차관보에게 한국이 발행한 단기국채를 미국에 맡기는 대신 미국으로부터 재무부증권(TB)을 넘겨받아 이를 현금화하는 방식으로 1백억달러이상을 조달할 수 있도록 하는 방안을 타진한 것으로 알려졌다.
결국 적어도 현단계에선 자력으로 금융위기를 극복하려는 한국정부와 한국의 금융위기 해법으로 IMF 구제금융에 주안점을 두고 있는 미국과의 미묘한 신경전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김경철·김준형 기자>김경철·김준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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