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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기구의 집단이기/정용덕 서울대 교수·행정학(전문가 진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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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기구의 집단이기/정용덕 서울대 교수·행정학(전문가 진단)

입력
1997.11.2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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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화따른 분권화로 정책갈등은 자연현상/무조건 반목·대립땐 국가적 손실 역기능만집단적인 이해관계 때문에 정부의 정책결정과 집행에 차질이 생기는 일이 최근 들어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다. 며칠 사이에 벌어지고 있는 모 대학병원에서의 의료인들의 파업을 비롯하여 노사간의 대립, 의사와 약사 그리고 한약사와 양약사 간의 분업갈등같은 사회집단들간의 이해대립과 그로 인한 집단행동은 비단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더 문제인 것은 이와 같은 집단적인 이익표출 행동이 최근에는 국가기구들간에도 적지 않게 일어나고 있는 점이다. 몇년 전에 사법개혁 추진과정에서 있었던 핵심행정부와 법원간의 갈등, 그리고 이번 정기국회에서의 금융개혁법을 둘러싼 재경원과 한국은행간의 대립, 또 형사소송법 개정을 둘러싼 법원과 검찰간의 갈등이 좋은 예이다.

이해관계를 같이하는 시민들이 집단을 형성하여 정부의 정책결정에 자신들의 선호를 투입하려고 노력하는 것은 자유민주주의 국가에서는 매우 자연스럽고 일면 바람직한 면이 있기도 하다. 대의제도에 의해서만은 충분히 반영되기 어려운 사회구성원들의 다양한 이익을 이익집단을 통해 보완적으로 반영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와 같은 이익집단 정치가 순기능적으로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이익집단간의 지나친 대립과 갈등으로 인한 정책결정의 교착이나 지연을 극소화하지 않으면 안된다. 이익집단간의 심각한 대립과 갈등으로 인하여 결국은 정책이 표류하고 지연되는 일이 발생한다면, 그것은 결국 그 이익집단들의 구성원은 물론이고, 그 외의 다른 사회구성원들에게도 피해를 입힐 수 있기 때문이다. 더욱이 정부기관간의 이해관계 때문에 정책이 표류하는 경우는 그로 인한 국민의 피해가 좀더 직접적이고 그 규모도 클 수 밖에 없다.

오늘날 구미 나라에서조차 더 이상 국가기구와 관료들을 중립적이고 합리적인 행위자로 보는 이론가는 없다. 국가기구나 관료집단도 그들 나름대로의 이해관계를 지닌 유기체이며,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행동하는 여러 이익집단 가운데 하나일 뿐이라고 간주하고 있다. 어찌 보면 그동안 우리나라는 국가기구나 관료들이 소속기관의 이익을 추구하기 위해 노골적으로 이익집단과 같은 행동을 하는 경우가 적었다고 할 수 있다. 우리나라처럼 고도로 집권화된 통치체제하에서는 국가기구나 관료들이 개별행동을 하기란 극히 어려웠으며, 그만큼 정책조정도 일사불란하게 이루어지는 면이 있었다. 그러나 비교적 일사불란하게 이루어지던 우리나라의 정책조정 매커니즘이 최근 들어 적지않게 와해되어가고 있는 모습이다. 이와 같은 현상은 이른바 김현철 비자금 사건이후 정당성이 크게 훼손된 김영삼 대통령의 권위실추 때문일 수 있으며, 여기에 정권말기에 따른 기강해이가 겹쳤기 때문일 수도 있다. 그러나 좀더 근원적으로는 우리 사회의 전반적인 민주화 진전에 따라 국가구조의 분권화가 이루어지고, 그에 병행하여 개별 국가기구들의 자율성도 증대하고 있기 때문인 것으로 풀이된다.

사실 국가기구들의 자율성증대는 과거와 같이 국가정책결정이 대통령에게 집중되는 것을 방지하고, 정책결정과정이 좀더 다원적으로 이루어 질 수 있도록 하는데 있어서 필수적인 요건이다. 국가기구들간의 다양한 관점과 아이디어들이 정책결정과정에서 원활하게 반영될 수 있다고 할 때, 과거에 획일적인 정책결정으로 인해 초래되곤 했던 대규모의 정책실패들을 미연에 방지해 줄 수도 있다. 그러나 이와같은 다원적 정책결정이 지니는 순기능은 어디까지나 그것이 국가기구들 간의 원활한 상호절충과 그것을 통해 민주주의적인 합의에 도달할 수 있을 때 비로소 가능한 것이다. 현재 우리나라에서 벌어지고 있는 것처럼 국가기구들간의 대립과 반목, 그로 인한 정책결정의 지연과 교착은 단지 국민후생에 손실만을 가져다주는 역기능적 현상에 지나지 않는다.

따라서 국가기구들과 공직자들은 이제부터라도 서로간의 이견을 절충하는데 있어서 좀더 민주주의적인 정책조정방식을 터득하고, 점차 그것을 제도화해 나가지 않으면 안될 것이다. 그렇게 하지 못하는 경우, 자칫 국민에 과거시절의 권위주의적 정책결정방식에 대한 향수를 불러 일으킬지도 모른다. 아니면, 그렇지 않아도 팽배해 있는 정부와 관료제에 대한 국민적 불신을 더욱 증대시킴으로써, 결국은 「작은 정부」 논리 일변도의 정부개혁을 재촉하도록 만들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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