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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경제팀에 바란다/이승훈 서울대 교수·경제학(아침을 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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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경제팀에 바란다/이승훈 서울대 교수·경제학(아침을 열며)

입력
1997.11.2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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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개혁안이 결국 미결된 채 국회는 문을 닫았다. 경제부총리는 사태에 책임을 지고 사임했다. 현직 대통령의 임기 만료를 겨우 3개월 남짓 남겨 놓은 시점이다. 새로운 경제팀이 과연 눈앞의 난국을 유효하게 다룰 수 있을지 걱정스럽다. 임기말 권력누수 현상은 어느 시기 어느 사회에서나 나타나는 것이라고 한다.당장 처리해야 할 과업이 막중한 우리의 경제부처가 임기말 증세에 말려든다면 가뜩이나 통제가 안되는 현재의 상황은 그야말로 걷잡을 수 없게 될 것이다. 정치권은 대통령 선거에만 매달려 있고 금융권과 기업들은 속수무책 갈팡질팡하는 중이다. 새 경제팀은 무엇보다도 조직을 철저히 장악하고 단호한 의지를 보임으로써 권력누수현상에 구애받지 말고 난국을 해결해 주기 바란다.

오늘의 금융위기는 결코 일과성의 것이 아니다. 그동안 고도성장을 일구어 오는 과정에서 누적된 구조적인 것이다. 그런 만큼 대책은 근본적 구조조정을 요하는 장기적인 것일 수 밖에 없다. 겨우 3개월밖에 남지 않은 잔여임기를 지나치게 의식한다면 시급한 응급조치를 빼면 별로 할 일이 없게 된다. 그러나 응급조치라고 하더라도 장기적 대책의 방향에 부합하는 것이라야 함은 물론이다. 내년 1월중에 국회에서 의결될 금융개혁법의 처리방향에 맞게 이루어져야 한다. 한마디로 새 경제팀은 임기말 정권임을 의식하지 말고 일해야 한다는 말이다.

현재 위기의 핵심은 국내 금융기관의 대외적 신용이 추락하고 있다는 것이다. 방대한 규모의 부실채권을 떠안은 금융기관의 신용이 추락한 것은 당연하다. 천문학적 규모의 부실채권이 발생한 것은 개발주도적 관치금융이 빚어낸 직·간접적 결과다. 한보처럼 정치권력이 개입한 여신제공은 물론 동남아투자에서 큰 돈을 날린 종금사의 무분별한 해외투자에 이르기까지 관치금융이 남긴 상처는 그 공만큼이나 크고도 깊다. 권력에 약한 은행경영과 발달하지 못한 투자심사기능이 결국 오늘의 위기를 자초한 셈이다.

정부의 말대로 우리의 실물부문은 매우 건실하다. 수출도 회복세로 돌아섰고 몇몇 부문은 선진국들과 경쟁해도 손색없는 세계 최일류 수준에 들어섰다. 다만 취약한 금융부문이 양산한 한보나 삼미 등과 같은 부실기업들이 문제이다. 이들 부채규모가 정상적 금융자금으로는 감당할 수 없어 도산에 이르기 시작하면서 금융은 공황상태를 향하여 치닫기 시작한 것이다. 현대의 복잡한 사회적 분업구조는 각 부문을 거미줄처럼 긴밀하게 연결하고 있기 때문에 한 부문의 이상은 금방 다른 부문으로 파급되고 만다. 부실대기업과 거래하던 우량기업이 대금을 못받으면 도산의 위기에 몰린다. 이 우량기업이 조업을 중단하면 그로부터 물자를 조달해가던 다른 우량기업도 조업에 차질을 빚는다. 이 차질은 다음 고리로 계속 파급되어 나간다. 생산활동에 차질이 발생하면 대출금을 원만하게 상환할 수 없다. 대출금을 상환 못하는 기업이 다발적으로 나타나면 금융부문의 대출활동은 위축된다. 자금이 조달되지 않으면 생산은 더욱 위축된다. 이러한 확대재생산적 악순환은 전국 유동성을 극도로 고갈시키는 신용공황까지 국가경제를 몰고간다.

취약한 금융활동으로 실물부문이 위축되면 금융부문이 떠안는 부실채권은 가속적으로 증가한다. 이 점을 정확히 보고있는 해외 금융기관들이 국내 금융기관들에게 외화대출을 회수하려는 것은 당연하다. 이것이 현금 외환위기의 본질인 것이다. 금융기관의 통폐합으로 단위 금융기관의 대외신용도를 높이는 일도 물론 중요하다. 그러나 실물부문 부실기업들의 정리를 서둘러 금융위기의 궁극적 원인을 해소하는 일도 못지 않게 중요하다. 정부나 한은이 나서는 외화차입, 금융기관이 부실채권을 정리하는 작업과 한은특융 등 긴급대책은 필요하다.

그러나 이 정책을 추진하는 과정에서도 새 경제팀은 이 근본적 원인을 치유해 나간다는 자세를 견지하면서 일해가기 바란다. 어차피 닥쳐올 물가상승으로 그 피해를 피부로 느낄 시민은 3개월 시한부의 새 경제팀에게 마지막 희망을 걸 수 밖에 없다. 또한 이 희망을 저버리지 말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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