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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의 빅뱅/염재호 고려대 교수·행정학(한국논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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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의 빅뱅/염재호 고려대 교수·행정학(한국논단)

입력
1997.11.2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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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서 시작되는 새질서로의 대폭발/사회전체 조직력의 준비가 없으면 살아남기 어렵다금융개혁이 난항을 거듭하고 있는 가운데 금융시장의 빅뱅(Big Bang)을 예견하는 용암의 분출이 끊이지 않는다. 동남아시아에 환율위기가 있나 했더니 우리의 환율도 달러당 1,000원대를 돌파했고, 홍콩 증시의 급락은 도쿄 뉴욕으로 이어져 결국 우리의 증시도 폭락시키고 말았다. 일본에서도 은행은 망하지 않는다고 하더니 전국 규모의 은행이 파산하고, 대형증권회사의 파산도 줄을 이을 전망이다. 「빅뱅」은 문자 그대로 대폭발이다. 너무나 당연하듯이 우주의 질서가 새롭게 형성되는 대폭발을 빅뱅이라고 한다. 21세기로 진입하면서 전세계의 자본시장은 빅뱅을 하려고 한다. 좀처럼 바뀔 줄 모르고, 서구의 시스템과 다르기 때문에 오히려 효율적이라던 일본의 경제시스템도 대폭발을 목전에 두고있다.

몇 주전 일본의 규제완화를 시찰키 위해 정부부처와 연구소를 방문한 소감은 한마디로 충격적이었다. 매년 여러차례 일본을 방문하거나 장기간 체류하면서 느끼던 것과는 전혀 다른 세기말의 변화를 감지하게 했다. 마침 현지에서 전세계의 증시가 폭락하는 것을 지켜보면서 21세기 국제경제질서의 재편이라는 빅뱅이 마치 화산폭발의 예비신호처럼 분출하고 있는 것으로 보였다.

일본의 경제전문가가 예측하는 일본의 빅뱅은 내년 4월, 개정된 외환법의 실시로 본격화한다고 한다. 일본내에서 달러의 국내유통이 허용되고, 달러의 대규모 일본 국내유입이 일어나면 달러의 강세와 함께 미국계 은행이 일본내에서 2, 3년내에 10배 이상 신장하게 된다고 한다. 반면 일본의 국내은행들은 미국이나 유럽의 은행들과 제휴를 하든가 아니면 흡수·합병되어야지 그렇지않으면 살아남기 어렵다고 한다. 증권회사도 대규모 한 두 회사를 제외하고는 생존이 불가능하다고 한다. 현재 1달러에 120엔 정도하는 환율이 200엔대로 상승할 것을 예견해서 서점에는 「200엔 시대」라는 제목의 책이 등장하고 있다.

이런 빅뱅의 핵심은 미국과 유럽이 주도하는 21세기 국제경제질서의 재편에 있다. 미국은 정보와 금융이 미래산업의 핵심이라고 보고 지난 10여년간 경기침체중에 이에 대한 산업경쟁력의 강화를 추진해왔다. 미국이 정보화를 외치면 우리도 쫓아가지만 실제로는 기술경쟁력에서 뒤지기 때문에 득보다는 실이 많을 수 있다. 언론에서도 부추긴 인터넷의 폭발적 사회확산이나 이동통신의 급격한 신장도 미국 정보산업에 크게 기여한다는 점을 주목해야 한다. 이런 점에서 일본이나 우리나 정부의 보호하에 국내시장에서 안주하던 금융계가 21세기로 진입하면서 구조적 빅뱅을 맞는 것은 피할 수 없는 현상이 되고 말았다.

이런 대폭발에서 살아남기 위해 일본은 안간힘을 쓰고 있다. 경쟁력강화를 위해서 전후 재벌의 해체로 없어진 지주회사의 설립과 재벌의 재등장을 용인하고, 이를 보완하기 위해 투명하고 공정한 경영을 확보하기 위한 「기업통치(Corporate Governance)」의 원칙을 경단련을 중심으로 천명하고 있다.

금융자본의 운영은 자기책임하에 이루어져야 한다고 대국민 캠페인을 하고, 정부는 재정적자를 줄이기 위해 예산삭감 등 피나는 노력을 기울일 것을 약속하고 있다. 심지어 연금지불의 20% 삭감설까지 논의되고 있다.

지난 주말 일본이 최초의 월드컵 본선진출을 결정지은 이란과의 경기후 오카다 감독은 일본의 승인은 조직력에 있었다고 말했다. 빅뱅이라는 전후 최초의 대규모 경제사회질서의 변화를 예견하면서 일본은 차분하게 조직적으로 대폭발에 대비하고 있다. 마치 규슈(구주)의 초등학생들이 화산폭발에 대비하여 헬멧을 쓰고 등교하는 것처럼. 또는 21세기의 새질서를 위해 일본의 행정개혁이 2001년 1월1일부터 실시되도록 준비하는 것처럼.

21세기는 빅뱅으로 시작된다. 빅뱅은 단순히 금융개혁이라는 부분적 개편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빅뱅은 대폭발이고 모든 질서를 뒤흔들어 새로운 질서를 만든다.

우리는 이 대폭발을 어떻게 준비하는가. 사회전체의 조직력보다는 정치가들의 개인기로 빅뱅을 극복하겠다는 것은 아닌지. 대선후보들이 한결같이 저효율 고비용 경제구조를 개선하겠다고는 하지만 그런 교과서적 구호만을 믿어도 되는 것인지. 21세기 빅뱅의 용암이 꿈틀대고 있는데 대선이라는 정치적 축제에만 들떠 있는 것은 아닌지. 축제에 참여하면서도 불안감을 감출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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