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세대 전체의 무게가 실린 방황하는 청춘의 자서전김이태의 장편소설 「슬픈 가면무도회」(해냄 발행)는 그 범박한 제목과 달리 한 세대 전체의 무게가 실린 방황하는 청춘의 자서전이다. 영국인 남자와 사랑에 빠져 외국을 전전한 작중인물 서경의 편력은 물론 그녀의 세대에 전형적인 것이라고 할 수 없다. 하지만 그것은 80년대 대학의 항전 세대에 잠재된 부정의 파토스를 도저한 형태로 제시한다. 80년대의 이념은 수많은 전향자를 낳고 덧없이 역사의 저편으로 사라졌지만, 부정의 열정은 그녀의 유목민적 행로에 섬뜩할 정도로 치열하게 살아 있다.
서경이 펼치는 대학시절에 관한 회상 중엔 특별히 80년대적인 경험이 있다. 집회 도중 누군가의 분신자살을 목격한 사건이 그것이다. 「모든 인간적인 것이 순식간에 발화한 물체」로 기억된 그 분신은 그것이 발생한 계기를 넘어 그녀의 영혼에 치명적인 영향을 미친 것으로 드러난다. 분신이 표상하는 자아의 순간적 연소는 진정한 실존의 이미지로 변형되어 그녀 자신의 체험 속에서도 거듭 나타나는 것이다. 그 자아의 연소 혹은 정열의 폭발은 김이태가 다루고 있는 광기 어린 탈주의 경험에서도 특히 일탈적인 것이다. 그것은 자기파멸의 문턱까지 치닫는 개인적 자유의 한 극한을 표시한다. 이야기상의 현재, 서경이 가정의 테두리에 갇힌 생활 속에서 애써 회복하고자 하는 「기억」이란 바로 그 자유의 기억이다. 그것은 평온한 일상이 가져다 주는 정착의 환상을 찢고 나와 그녀의 유목민으로서의 자아를 소생시킨다.
「슬픈 가면무도회」의 떠돌이 이야기는 놀라운 절실성을 갖고 있다. 그것은 소속감과 더불어 정체성을 잃어버리고 자기긍정과 부정 사이의 막막한 진공 속에 내던져진 개인의 고통과 열광을 생생하게 표현한다. 그 진공의 정직한 체험을 가리켜 자유의 실감이라는 말을 써도 좋으리라. 그러나 그것은 자유의 전율을 실어나르기에는 미흡한 소설이다. 번역소설을 읽는듯한 느낌을 주는 생경한 문체, 대상과의 거리를 놓친 사이비 삼인칭 서술 등은 독서를 방해한다. 김이태의 희귀한 개성이 더욱 정제된 문학적 표현을 만나 찬연한 당돌함에 이르기를 바란다.<문학평론가·동국대 교수>문학평론가·동국대>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