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1997년,20대,성혁명 물결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1997년,20대,성혁명 물결

입력
1997.11.19 00:00
0 0

한국의 20대 사이에 성혁명 물결이 일고 있다. 「자유롭고 일상적인 성」의 새로운 흐름은 결혼을 전제로 한 고전적 성관념은 물론 「사랑의 확인 또는 절정」이라는 최근까지의 관념마저 깨뜨리고 있다.20대의 새로운 성 패러다임은 그들 사이에 단순한 일회성 쾌락을 위한 성이 다른 어떤 조건과도 무관하게 독립해 존재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물론 이런 흐름이 아직 대세를 이룬 것은 아니다. 그러나 오래지 않아 그렇게 되기에 충분한 폭발력을 지니고 있다.

더 이상 쉬쉬하고 있을 일도 아니다. 「자유로운 성」은 커녕 성 자체에 대한 언급을 터부시하던 자세에서 벗어나 이제는 분명하게 모습을 드러내고 있는 새로운 성의 행태에 대해 이야기해야 한다. 찬성 반대의 차원이 아닌, 어떻게 보고 어떻게 새로운 성의 개념을 이해할 것이냐에 대해 논의해야 한다.

무역회사 직원 A씨(28)는 한달에 두어번 소개팅에 나간다. 결혼을 약속한 애인이 있지만 왠지 빠지기가 싫다.

퇴근후 저녁 늦게 시작돼 자연스레 술자리로 이어지곤 하는 소개팅에서 처음 만난 파트너와도 함께 밤을 새는 경우가 종종 있기 때문이다.

소개팅에서 그가 만난 20대 여성들은 더러 집에서 노는 예도 있지만 대부분은 직장에 다니고 있다. 남이 부러워할 만한 전문직종 종사자들도 많다. 같이 술을 마시고 대개는 나이트클럽이나 노래방 등에서 2차를 한다. 2차가 끝나 러브호텔로 이어져도 서로 어색해하지 않는다. 대부분 스스럼 없이 옷을 벗고, 샤워를 하고, 적극적으로 섹스를 했다.

나중에 다시 전화를 하는 일은 거의 없다. 그냥 서로 까맣게 잊는다. 더러 전화를 하면 반가워 하지만 하룻밤의 인연에 특별한 의미를 두지는 않는 눈치다. A씨도 그런 그네들이 부담이 없어 좋다. 『글쎄요, 특별히 제가 매력이 있어서라기보다는 누구든 그런 기회, 그런 장소에 있으면 그렇게 되는 것 아닌가요. 남자들이야 특별히 싫을 이유도 없지요. 그렇지 않은 사람도 많다구요? 기회가 없었기 때문이겠지요』

여행사 직원 B씨(25). 장래를 약속한 애인(26)이 미국 유학중이어서 1년에 한두달 방학을 틈타 같이 지낼 수 밖에 없는 처지다. 대신 그는 이따금씩 호텔 나이트클럽 등에서 또래 남자를 만난다. 「바람 피운다」는 죄책감은 없다. 애인에 대한 사랑은 변함이 없다고 굳게 믿고 있다.

서글서글한 외모에 성격이 시원시원해 남자들과 쉽사리 친해진다. 「부킹」을 넣어 퇴짜를 맞은 적이 없다. 다만 승용차가 없거나 술값을 가지고 짜게 구는 등 「빈티」를 내는 남자는 상대하지 않는다. 외모도 외모지만 『남자는 성격이 좋아야 한다』는 게 그의 기준이다. 웬만큼 마음을 「흔들어 놓는」 남자가 아니면 다시는 연락하지 않는다. 우연히 같이 잤다는 이유만으로 추근거리는 남자는 싫다.

예비신부 C씨(27). 대기업 영업파트에 근무하는 그는 올 겨울 결혼할 예정이지만 두세 남자와의 관계를 계속하고 있다.

지금 만나는 남자 가운데는 유부남도 한 명 있다. 회사 거래 관계로 알게 된 납품회사 담당자로 술도 잘 사고 호탕한 성격이 마음에 들어 자주 만나다 잠자리를 같이 했다. 『곧 결혼한다는 사실을 그 사람이 알고 있어 오히려 마음이 편해요』

학원강사 D씨(25). 깊은 사이이던 남자 친구와 헤어진 뒤 다시 한 남자를 만나 두번이나 중절수술을 했다. 『이별의 서러움에 너무 쉽게 몸을 허락한 것 같아요. 처녀도 아닌데 무슨 상관이냐, 좋아하니까 괜찮다는 생각이었어요. 아직도 섹스가 뭔지는 잘 몰라요. 그저 좋아하는 사람하고 같이 지낸다는 사실이 좋았죠』

이같은 젊은이들의 성행태에 대한 전문가들의 진단은 다양하다. 몸, 즉 육체를 더이상 정신의 하위개념으로 여기지 않으려는 문화조류의 영향, 홍수같은 성담론, 남녀의 만남이 어렵지 않은 사회구조, 의식의 서구화, 유흥·향락 산업의 번창, 기성세대에 대한 거부감, 세기말적 우울 등을 배경으로 들었다. 또 문제는 성개방 풍조가 아니라 생각과 준비없이 섹스를 나누는 것과 이중적인 성의식을 극복 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정신과 전문의 양창순씨. 『남자는 충동적으로 섹스를 원하고 여자도 준비없이 응해 중절수술 등 불필요한 고통을 겪는 예가 많아요. 또 친구들에게 자랑스럽게 성경험을 얘기하던 여자들도 결혼할 때는 사실을 덮고 다니느라 바빠요. 평소 여자의 성경험에 대해 관대하다고 공언하던 것과는 달리 아내에게 따지지도 못한 채 혼자 고민하다 병원을 찾는 신세대 남편도 많아요. 머리는 열려 있지만 가슴은 아직 닫힌 상태지요』<황영식 기자>

◎대학생 69% “혼전섹스 문제안돼요”

대학생들은 결혼과 성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갖고 있을까.

최근의 각종 여론조사 결과는 대체로 ▲10명 가운데 7명이 혼전 성관계에 도덕적 죄책감을 느끼지 않고 ▲절반 이상은 배우자의 혼전 순결 여부에 대해서「신경을 쓰지」 않으며 ▲사랑이 반드시 결혼으로 이어지지 않을 수도 있다는 생각을 보여 준다.

대학교육 전문지인 한국대학신문이 최근 전국 20개 대학 1,042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69.5%가 혼전 성관계에 문제가 없다는 생각을 밝혔다. 이 수치는 지난해 같은 설문조사 때보다 오히려 9.1% 낮은 것. 특히 결혼을 전제로 한 사이에서만 혼전 성관계가 가능하다고 답한 사람은 21%에 불과한 반면 「사랑하는 사이면 관계없다」는 응답이 39.8%, 「아무 조건이 없어도 가능하다」도 8.7%에 이르렀다. 결혼이 성관계의 필요조건이라고 생각하는 대학생은 전체의 5분의 1에 지나지 않는 셈이다.

성 경험 여부에 대해서는 전체 남녀의 17.4%가 경험이 있다고 답했다. 1학년생의 경우 7.4%, 4학년생은 전체의 4분의 1이 넘는 28.2%였다. 여대생은 전체의 7.4%였다.

서울대 재학생 346명을 대상으로 한 「서울대생들의 성과 사랑에 대한 의식」 조사에 따르면 전체의 절반 수준인 49.5%가 이성교제를 하고 있다. 하지만 사랑하는 사람과 꼭 결혼하게 될 것이라고 응답한 학생은 3.5%, 상대방과 결혼을 약속한 사람 중에서도 「100% 결혼이 확실하다」고 답한 사람은 30.8%에 불과했다. 신세대 대학생들이 사랑과 결혼을 등식으로 받아 들이지 않는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부산대생 300명을 대상으로 한 조사 역시 신세대의 성의식을 잘 나타낸다. 응답자의 83%가 『결혼 예정자의 혼전 순결 여부와 상관없이 결혼하겠다』고 답했으며 53%는 『전혀 개의치 않는다』고 말했다.<이상연 기자>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