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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은 왜 피곤한 도시인가(장명수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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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은 왜 피곤한 도시인가(장명수 칼럼)

입력
1997.11.1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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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에 살기가 너무나 피곤하다고 호소하는 사람들이 많다. 오랫동안 외국에 있다가 돌아 온 사람들은 김포공항에서 벌써 피곤함이 시작된다고 말한다. 마중나온 사람이 가지고 나온 자동차를 타든, 버스나 지하철이나 택시를 타든, 뭔지 폭력적인 분위기에 휩싸이게 된다. 서울에 왔구나 라는 안도감, 차창 밖의 경치를 바라보며 시내로 들어가는 평화로운 기분을 기대하기는 힘들다.외출했다가 집에 오면 한동안 누워서 쉬어야 할만큼 피곤하다고 말하는 주부들도 많다. 서울에는 피곤을 퍼트리는 박테리아가 있나. 공기중에 떠돌다가 사람들의 몸속으로 들어가 기진맥진하게 만드는 걸까.

교통혼잡, 오염된 공기, 불친절, 무질서, 부정부패에 대한 혐오감등 우리를 피곤하게 하는 요인들은 여러가지가 있다. 그리고 그 피곤을 확대 재생산하는 것은 우리 모두의 신경질이다. 신경질은 물론 공연히 일어나는 것이 아니고 조악한 환경속에 피곤이 쌓여서 생기는 것이다. 서울에 살면서 신경질 부리는 것은 무리가 아니라고 말 할 수도 있다. 그러나 신경질이 무엇을 해결해 줄 수 있겠는가.

신경질은 어느덧 서울사람들의 제2의 천성이 된 듯 하다. 걷다가 또는 차를 운전하다가 누군가와 부딪치면 미안하다는 사과 대신 서로 신경질부터 내고, 잘못 걸려온 전화는 으레 신경질로 끊어 버리고, 서비스직종에서 조차 누가 두번만 질문하면 신경질을 부리고, 이 물건 저 물건을 고른다고 신경질내는 상점 점원들도 있다.

어떤 택시 기사들은 길이 막혀도 신경질, 합승이 잘 안돼도 신경질, 손님이 가자는 코스가 마음에 안들어도 신경질을 낸다. 정치가 「개판」이고, 다 「도둑놈」들이니 모조리 감옥에 넣어야 한다고 신경질을 내기도 한다. 버스 기사들 중에도 간혹 그런 사람이 있다. 라디오 소리를 좀 줄여 달라는 손님, 내리고 탈 때 행동이 느린 손님, 어디를 가는데 어떤 정류소에서 내려야 하느냐고 묻는 손님들에게 벌컥 신경질을 내는 기사들을 가끔 보게 된다. 그들은 신경질이 나면 차를 난폭하게 몰기 때문에 차에 탄 모든 손님들이 아슬아슬함을 견뎌야 한다.

신경질은 직장안에도 퍼져 있다. 동료 사이, 선후배 사이, 상사와 부하 사이, 경영자와 사원 사이에 신경질이 차 있어서 아무것도 아닌 일에 날카로운 반응이 나오거나 예기치 않았던 충돌이 벌어지기도 한다. 가정이라고 무사하겠는가. 단 두마디도 대화가 이어지지 못할 만큼 상대의 말을 대뜸 신경질로 무찌르는 부부, 학교생활에서의 크고 작은 스트레스로 걸핏하면 부모에게 신경질을 쏟아내는 아이들도 적지 않다.

신경질이란 신경질을 부리는 사람에게나 당하는 사람에게나 모두 상처를 남긴다. 어떤 날 직장에서 택시에서 버스에서 나자신과 남들의 신경질에 심하게 부대끼고 나면 온몸에 멍이 든 것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그 멍은 쉽게 가시지 않고, 날카로운 자기보호 본능과 저항감을 불러일으켜 결국 또 다른 신경질로 이어지기 쉽다.

가까운 나라인 일본과 우리를 비교하면서 『일본에서는 온 국민이 웃으며 일하고 있는데, 우리는 왜 온 국민이 화를 내면서 일할까』라고 안타까워 하는 사람들을 자주 만나게 된다. 일본사람들은 겉으로만 친절하다느니 이중적이라느니 흉보는 사람들도 있지만, 「이중적」이어야 할 때는 이중적이어야 한다. 그들은 본심이 어떠하든 사회생활에서는 예절바르고 친절하게 처신하여 사회와 자신의 품격을 지키고 있다. 공동생활에서 벌컥벌컥 신경질내는 사람이 「솔직한 사람」인가. 그들은 마땅히 정서장애자로 분류해야 한다.

서울에 살고 있는 많은 사람들은 자신의 7, 8할을 불만과 신경질로 채우고, 나머지 2, 3할을 인내와 성의와 직업의식으로 겨우 가리고 있다. 『세상이 왜 이 모양이냐, 다 썩었다, 다 내 마음에 안 든다, 내가 겨우 이런 시시한 일을 하고 살 사람인줄 아느냐…』라는 불만이 가득 차 있다.

세계에서 가장 높은 인구밀도속에 세계에서 가장 신경질 잘 내는 사람들이 모여있는 도시 서울, 그러니 서울의 삶이란 얼마나 피곤하겠는가. 신경질이 나는 이유는 많다. 그러나 우리 모두가 성의를 다하여 악조건을 개선해 나갈 것인가, 각자 있는대로 신경질을 부리면서 악조건을 더욱 악화시킬 것인가. 우리의 선택은 둘 중 하나밖에 없다.<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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