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임법·남녀의 성적차이 등 잘 모른채/체위·테크닉 등 성행위만을 성으로 착각「성의식은 완전히 개방적으로 변했지만 성지식은 여전히 빈약한 상태」
20대의 성행태에 대한 전문가들의 진단이다. 이들은 성에 대해 자유로운 생각을 갖고 있지만 피임과 남녀의 성적 차이 등에 대한 지식은 별로 갖추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산부인과의사 M씨(40)는 『임신중절을 위해 찾아 오는 20대들이 정말 피임의 기본이라도 알고 있는지 궁금하다』고 말했다. 원치 않는 임신으로 이어진 미혼남녀의 경우 거의 모두가 피임에 신경을 써왔다고 말하지만 그 방법 자체가 너무 원시적이고 비과학적인 것이어서 혀를 차게 된다는 것이다.
또 임신이 되고도 한참 지나서 찾아와 수술이 불가능한 여성의 90% 이상이 20대이기도 하다. 『상담을 해보면 20대 남녀 모두 체위 등 그리 중요하지 않은 것은 잘 알면서 정작 평생을 후회하게 될 지도 모를 피임법에 대해서는 대충 짐작만 하고 있는 것같다』는 것이 M씨의 설명이다.
서울 강남의 한 카페에서 만난 H씨(22). 그는 『여고를 졸업할 때까지 성과 관련해 학교에서 배운 것은 배란주기 계산법 뿐』이라며 성교육이 문제라는 주장이다. 디자인학원에 다닌다는 그는 성지식은 결국 소수의 친구들과 선배, 혹은 애인에게서 듣게 되는 경우가 절대적이라고 말했다. 『친하게 지내는 언니, 친구들과 만나면 성에 관한 이야기를 많이 해요. 실제 경험과 책에서 본 내용을 종합했다며 여러 이야기를 실감나게 해주는 언니가 있는데 모두가 그대로 믿게 돼요』 하지만 H씨는 『이 모임에 참가하는 다른 언니 한 명이 같은 남자 때문에 두 번이나 낙태를 했다』고 귀띔했다.
성에 대한 담론이 무수히 쏟아져 나오는 대학가 곳곳에도 성에 대한 무지가 드러나기는 마찬가지다. 대학 화장실의 낙서는 성에 대한 젊은이들의 강박관념을 그대로 드러내 주는 증거이다. 최모씨(22·Y대)는 『성에 대해 자유롭게 이야기하자는 분위기는 조성됐지만 실제 성에 대해 무엇을 어떻게 이야기할 지에 대해서는 누구도 알고 있는 것 같지 않다』고 말했다. 최씨는 『성정치학, 페미니즘 등의 말이 유행하면서 성에 대한 이념적 정리는 가능해졌지만 이성친구와의 관계설정이나 성욕구 등 실생활에서 부닥치는 성행태들에 대한 고민은 여전히 해결되지 않고 있다』고 덧붙였다.
케이블방송 동아TV가 미혼남녀 각 1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 성에 대해 가장 궁금한 것을 묻는 질문에 여성 응답자의 34%가 피임법이라고 응답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반면 남성은 29%가 체위, 25%가 다양한 테크닉의 구사방법, 18%가 적당한 횟수를 궁금해 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에 대해 정신과 전문들은 양창순씨는 『젊은이들마저도 성을 우화화하는 잘못을 하면서 이를 깨닫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성교만을 성이라고 잘못 생각해 남성은 체위와 횟수, 테크닉 등에 관심을 갖는 「변강쇠신드롬」에 젖어 있고, 여성은 방어적 입장에서 피임법이나 「남자가 실망하지 않을까」하는 데만 신경을 쓰고 있다는 것. 그들은 『남녀가 서로 성적 매력을 느끼게 되는 동기에 대한 신체적·정서적 차이를 피임법 못지 않게 중요한 성교육 내용으로 삼아야 한다』고 주장했다.<이상연 기자>이상연>
◎즐거운 성 육체만의 문제일까?/순간의 쾌락에만 집착할수록 남녀관계에는 점점 깊은 단절
섹스는 무조건 즐거운 것? 신세대의 성의식 수준을 체감하게 하는 대표적인 변화는 많은 젊은이들이 섹스를 「즐거운 것이고 상대방과 쾌락을 나누는 행위」로 규정하는 태도다.
섹스를 사랑의 한 과정, 혹은 결과로 생각하기 보다는 일시적 쾌락의 수단으로 이해하려는 태도는 자칫하면 방종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견해다.
결혼한 지 오래된 부부 사이에서도 느끼지 못하는 경우가 있는 「오르가슴」을 성관계 횟수와 상관없이 『매번 느낀다』고 말하는 젊은이가 느는 것도 같은 맥락. 이같은 생각은 또래집단 사이에 그릇된 성관련 담론을 만들고 심지어는 장차 부부관계에까지 엉뚱한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서울의 한 종합병원 정신과를 찾은 20대 후반 신혼부부. 남편이 먼저 병원을 찾았다가 아내와 함께 다시 오라는 의사의 권고를 받았다. 남편의 고민은 뜻밖에도 아내가 너무 쉽게 오르가슴을 느낀다는 것이었다. 『경험이 없다면 그렇게 쉽사리 희열을 느낄 수 없을텐데…』하는 게 그의 생각. 뭔가 잘못된 것 같아 회사일도 손에 잘 잡히지 않을 정도니 부부관계가 쌀쌀해 지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그 아내와의 상담에서 문제점은 쉽게 발견됐다. 아내의 문제는 이른바 「오르가슴 강박관념」. 「섹스는 즐거워야 한다」는 신세대 성의식에 억눌려 남편 앞에서 의식적으로 「쇼」를 한 것이다. 『먼저 결혼한 대학 동창들에게 들었던 대로 했을 뿐』이라는 것이 아내의 주장이었다.
아내와의 섹스에 대해 잘못된 생각을 가졌던 것은 남편도 마찬가지. 마음속으로는 아내를 의심했으면서도 친구나 동료들에게 자신이 「강한 남자」임을 과시하려고 아내의 만족감을 포장해 냈다.
전문가들은 『많은 젊은이들이 성의 진정한 의미는 모르는 채 오르가슴이라는 형식에만 매달리는 것 같다』면서 『사랑하는 사람과 지속적으로 관계를 맺었을 때 느끼는 희열이 진정한 오르가슴』이라고 조언했다.<이상연 기자>이상연>
◎여대 화장실 낙서를 보면/공개된 토론의 장이 없다/보수시각은 공박하며 자신문제엔 움츠려/‘임신이 겁난다’‘내가 쉬워 보이는 걸까’… 세미나 등 성담론 홍수속 구체적 고민 풀 통로는 부재
강한 변화의 흐름이 나타나고는 있으나 전반적인 신세대의 성의식은 아직 이중적이다. 성에 대한 보수적 시각을 시대착오라고 공박하면서도 정작 자신의 문제를 얘기할 때는 몸을 움츠린다.
이런 모습은 대학가에서도 마찬가지다. 최근 들어 대학에서는 성문제에 초점을 맞춘 포럼이나 세미나가 자주 열려 얼핏 보아서는 성에 대한 담론이 넘치고 있는 듯하다. 그러나 이런 겉모습과는 달리 개개인의 성문제를 속시원히 말하지 못하고 고민하는 것은 아직 크게 바뀌지 않았다. 특히 여학생의 경우에는 이런 현상은 더욱 심하다.
여자대학 화장실 벽의 낙서. 첫눈에는 장난을 친 것 같지만 자세히 들여다 보면 성문제로 고민하는 여대생들의 자화상이 그대로 담겨 있다.
「얼마전 관계를 가졌다. 겁이 난다. 혹시 임신이면 어떻게 하나」 「그는 나에게 육체적 관계만을 원한다. 하지만 고통때문에 호텔가기가 무섭다」 「섹스 자체는 실망스럽게도 잠깐의 과정일 뿐이었다. 영화에서 보던 그런 것은 없었고 난 무덤덤하게 그렇게 있었다」 「만나는 남자마다 꼭 성관계를 요구한다. 오래 사귄것도 아닌데…, 내가 쉬워 보이는 걸까」
그런 고민에 대한 해답이나 반론도 한쪽편에 적혀 있다. 「자신의 몸에 대해 잘 알지 못한 채 너무나 바보같은 짓을 했다. 그가 당신을 자신의 몸처럼 사랑한다면 당신이 이런 걱정을 하지 않도록 해야 했다」 「본인 의사와 관계없이 남자와 자는 것도 봉건적인 사고방식이다. 싫으면 거절해야 하고 당신이 하고 싶을 때는 떳떳하게 응하라」
또 첫경험의 고통을 피하는 법, 피임법, 체위 등 제법 그럴듯한 설명도 눈에 띈다. 「사람은 누구나 성욕을 가지고 있다. 혼전 성관계에 대한 죄책감에 시달리지 말라. 그러나 섹스는 참사랑을 전제로 해야한다」는 등의 충고도 있다.
두 여자 대학의 화장실을 조사한 서울 E여대 4학년 A양(24). 『여학생들의 낙서는 일단 그 내용을 믿어도 됩니다. 장난삼아 그런 짓을 하지는 않아요. 상급생이 되면서 주변에서 성문제로 고민하는 친구들이 하나 둘 늘어나고 있고 더러는 성문제를 매우 가볍게 생각하는 학생들도 있습니다. 그러나 아직까지 객관적인 얘기는 과감하게 하지만 막상 자신의 문제가 되면 성개방과 전통적 순결의식 사이에서 갈등하는 게 대다수의 현실입니다. 마땅히 털어놓고 이야기할 곳이 없으니까요』
전문가들은 『성교육은 커녕 제대로 된 지침서조차 없는 사회에서 신세대가 겪어야 하는 각종 성문제는 해결책 없이 속으로 곪아가고 있다』며 『성문제가 양지에서 거론될 수 있도록 비밀이 보장되는 공론의 장이 만들어져야 한다』고 지적했다.<염영남 기자>염영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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