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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관념 제각각 “내 멋대로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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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관념 제각각 “내 멋대로 산다”

입력
1997.11.1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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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정표현 한 방식” 주장하는 프리섹스주의자에서부터 순결 고집하는 신신세대까지 “옳고 그름 따지는게 더 우스워”『섹스가 뭐 별건가요? 애정 표현의 한 방식이잖아요. 서로 즐거운 시간을 보내자는데 뭐가 문제가 되나요. 성욕과 식욕은 기본적인 욕구 아닌가요』

김모(26·회사원)씨는 3개월 가량 사귄 여자친구가 있다. 결혼생각은 없지만 잠자리는 이미 여러번 같이 했다. 물론 첫 여자친구도 아니다. 그간 사귀었던 10여명과도 별 생각없이 관계를 가졌다.

『여자친구가 있는 사람이면 으레 성관계를 갖는 걸로 생각하지요. 서로 좋아하니까 섹스가 그 도구로 당연히 사용되는 것이고 그러다보니 성관계 횟수가 어느 정도는 돼야 비로소 진짜 사귀는 사이라고 여겨집니다』

김씨는 애인말고도 나이트 클럽이나 친구 소개로 만나는 「잠깐 연인」과의 데이트도 즐긴다. 처음 만나 하룻밤만 같이 보내고 헤어지는 경우도 있지만 대개 3, 4번 더 만나 관계를 갖는 것이 보통이며 그 이후 서로의 「느낌」이 괜찮으면 진짜 사귀는 사이로 발전하게 된다. 김씨의 친구들도 성에 대한 생각이 비슷했다. 『섹스란 그저 스쳐가는 것이다』 『모두들 하는데 나만 안하면 소외된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

김씨의 대학 동창인 최모(26)씨는 더욱 적극적이다. 그는 『나이트 클럽에서 내가 점찍은 여자와 잠자리까지 같이 하게 되면 왠지 뿌듯한 생각이 들어요. 상대방도 나를 섹시하거나 괜찮게 봤으니까 끝까지 간 것이잖아요. 내 존재가 확인된 것 같아 기분이 으쓱해집니다』고 말했다.

그들은 또 『애인관계란 서로 구속당하는 측면이 있잖아요. 하지만 하룻밤만 만나고 헤어지는 관계라면 문제될 것도 신경쓰일 것도 없어요. 게다가 상대를 자주 바꿀 수 있는 재미도 있고요』라고 말했다.

여럿이 어울렸던 자리에서 그날의 「퀸카」와 누군가가 성관계를 갖게 되면 그 이야기가 대번 다음날의 화제로 떠오른다. 「어제 그 사람은 어떻더라」는 식으로 이야기를 나누는게 보통이다.

『섹스란 사랑으로 향하는 징검다리 같은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 단계를 거친 뒤 서로의 사랑이 확인돼야 결혼 이야기가 나오는 게 자연스러운 것 아닙니까. 「혼전 성관계는 부도덕하다」 「결혼과 연계해서 성관계가 이뤄져야 한다」라는 따위의 말은 전혀 현실과 동떨어진 얘기죠』

그들의 말. 『처녀요? 요즘도 그런 걸 따집니까? 우리 주위에서는 그런 말하는 사람은 한 명도 없어요. 어차피 결혼이란 서로가 사랑해서 하는 건데 그게 무슨 중요한 조건이 된다는 겁니까. 순결이란 육체보다는 정신에 있는 거죠.그것은 남녀를 떠나 우리 세대 상당수가 갖고 있는 생각일 겁니다』

그러나 이들도 성에 대한 자신들의 생각과 행동이 신세대를 대표한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친한 친구 중에는 혼전 성관계를 고집스레 거부하는 사람도 있고 반대로 프리섹스주의자도 있기 때문이다.

『신세대들의 성에 대한 관념은 모두 제각각이죠. 그저 서로의 가치관대로 살아가는 것이지, 성에 대해 어느 것이 옳고 어느 것이 그르다고 구분짓는 것 자체가 더 우스운 것이 아닐까요』<염영남 기자>

◎기성세대의 반응/“설마 그렇게까지…”/인륜도덕 강조하며 대체로 차가운 시각/20대성 문제삼는 자체가 남성위주 편견 지적도

『설마 그렇게까지…』 취재팀이 「20대 성혁명」 현장에서 주워 담은 이야기를 접한 기성세대의 첫 반응은 놀라움이다.

두 아이를 두고 있는 서울 마포구의 주부 H씨(43). 『제 딸이 나중에 그럴 수 있다는 생각만 해도 눈앞이 캄캄합니다. 물론 우리가 대학 다닐 때도 혼전 성관계를 갖는 애들이 여럿 있긴 했지만 거의 그대로 결혼해서 살고 있어요. 그때만 해도 섹스는 강한 약속같은 것이었지요. 충동과 책임을 어느 정도 조화시켰던 셈입니다』

서울 대학로에서 작은 음식점을 하고 있는 C씨(46). 『그런 풍조가 아직 그렇게 널리 퍼진 것은 아닐 겁니다. 요즘 세대가 길거리에서도 심심찮게 포옹하는 등 애정 표현이 짙어진 건 사실이지만 그렇게까지 생각없이 행동하기야 하겠어요? 극히 일부가 그랬던 것은 옛날에도 마찬가지였어요. 그런 부류의 일이라고 믿고 싶어요』

걸러야 할 것과 말 것을 구분하지 않고 자극적인 광고나 사진을 그대로 보여 주는 매스컴의 책임을 지적하는 목소리도 높았다. 또 가정과 학교에서 기본적인 성교육조차 이뤄지지 않는 것을 문제점으로 지적하기도 했다.

조금 나이가 든 층에서는 아예 말세론을 논하기도 했다. 세 아들을 모두 분가시키고 부부 둘이서 살고 있는 C씨(61·여·서울 구로구). 『세상이 어떻게 돌아 가는 것인지…. 그래 가지고 나중에 어떻게 가정을 제대로 지켜 나갈 수 있겠어요. 그러니까 결혼한 후에도 부부가 서로 바람을 피는 게 연속극으로 나올 정도겠지요. 길거리에서 젊은애들이 하고 다니는 꼴을 보면 그러고도 남아요. 정말이지 낯이 뜨거워 볼 수가 없어요』

한편으로 상대적으로 수가 적기는 했지만 「20대 성혁명」을 문제삼는 것 자체가 지나친 남성 위주의 편견이라는 지적도 있었다. 결혼 8년째인 주부 S씨(38). 『미혼 남녀가 서로 어울리는 것이 무슨 문제인가요? 과거에도 남자들은 늘 그랬는데 여자들이 막상 그런 모습을 보이니까 난리를 치는 듯한 생각도 드네요. 혼인의 순결도 결혼 이후의 절제를 의미하는 것 아닙니까?』

기성세대의 시각은 대체로 차가웠다. 적어도 성문제에 관한 한 「인륜도덕」을 강조하는 외에 다른 대책이 있을 수 없다는 태도가 지배적이었다.

공론화조차 꺼리는 기성세대와 이미 어른 흉내내기에 바쁜 10대. 그들 사이에서 20대 성의 갈등은 길게 이어질 수 밖에 없는 실정이다.<황영식 기자>

◎전문가 진단/양창순 서울백제병원 신경정신과장/“성은 인간으로서 살아가는 에너지” 올바른 개념이 정립돼야 바로 ‘해방된 성’

연애와 결혼의 구분이 기성세대에게 충격이던 때가 있었다. 연애하는 사람과 결혼하는 사람은 다를 수 있다는 것만도 놀라움이 아닐 수 없었다. 지금은 아예 사랑과 섹스는 구분돼야 한다는 풍조가 젊은 세대에 번지고 있다. 기성세대의 「고리타분한」 윤리관은 더 이상 설 자리가 없는 듯하다.

한 세대 전만 해도 스무살 언저리의 싱그러움은 수줍음과 동의어였다. 그러나 요즘 20대는 어쨌든 「튀어야」 하는 당당하고 풍요로운 세대이다. 때에 따라 사랑과 섹스를 나눌 수도 있고 또 그럴 줄 알아야 똑똑하다는 소리를 듣는다. 성적 자유는 마치 그들의 특권인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아직 모든 젊은 세대가 다 그런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일부라고는 하지만 얼마든지 사랑 없는 섹스가 가능한 것은 물론이고 사랑없는 결혼도 해치울 수 있다는 풍조는 위험천만이다. 언젠가 나를 찾아 온 한 스무살짜리는 『결혼하기 전에 실컷 즐기다가 처녀막 수술하고 부모가 골라주는 괜찮은 집안 남자 만나 잘 살텐데 선생님이 무슨 상관이에요』라고 당당하게 주장하기도 했다.

자식을 가진 부모라면 누구나 가슴을 칠 노릇이지만 인정해야 할 현실의 한 단면이기도 하다. 물론 기성세대의 책임이 크다. 성의 「ㅅ」자만 나와도 펄쩍 뛰는 것이 그들의 앞모습이다. 그러나 곳곳에서 성의 매매를 행하는 것이 그들의 뒷모습이 아닌가. 이런 모순과 이중적인 태도는 젊은 세대의 가치관을 혼란시키고 그들이 성적 방종으로 흐르는 빌미를 제공했다.

사회문화적 배경도 무시할 수 없다. 사회가 스피드화하면 사람들은 인내심이 약해진다. 즉물적인 만족이 모든것을 좌우하고 필요한 것은 오로지 새로운 자극 뿐이다. 자극은 말초적, 본능적, 순간적인 성격을 띤다. 인간관계에서도 시간을 두고 살펴보고 서로 적응하려는 노력을 하지 않는다. 첫눈에 좋으면 붙었다가 싫으면 바로 떨어진다. 인스턴트화하는 것이다.

성의 상품화는 더욱 간과할 수 없는 문제이다. 성을 상품화하는 사회에서 성에 대한 진지한 태도가 사라지는 것은 필연적이다. 성폭력 사건 발생률과 성의 상품화율이 비례한다는 연구결과가 이를 뒷받침한다. 한편으로 우리사회에 만연한 우울증에도 주목해야 한다. 사람들이 삶의 목표와 희망, 삶의 흥미를 잃는 사회적 우울증은 알코올·약물 중독, 도박, 성적 문란 등을 낳는다.

성의 올바른 개념은 「인간으로서 살아 가는 에너지」가 돼야 한다. 즉 자신이 남자 또는 여자라는 사실과 관련된 생각, 학습, 가치, 개념, 상상을 포함한 전체적 인간을 의미하며 이것이 바로 마르쿠제의 「해방된 성」이다.

나는 오늘의 젊은 세대가 삶의 에너지를 있는 그대로 싱싱하게 드러내기를 바란다. 넘치는 생명력만으로도 기성세대에 대한 멋진 도전이 될 것이다. 또한 그들이 단순한 방종과 책임있는 자유를 구분하기를 바란다.

아무리 성적으로 자유로운 사회라도 사랑없는 섹스나 자유로운 성적 표현이 모든 사람에게 자연스럽게 받아들여 질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진정한 성은 상대방에게 자신이 특별하고 가치있는 존재로 보호받는 느낌을 갖게 하고 건강한 자존심을 키워 준다. 그것을 제대로 누리려면 성이란 곧 우리의 정서이며 인격의 표현이라는 깨달음이 먼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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