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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시지옥’ 언제까지/윤정일 서울대 교수·교육학(아침을 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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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시지옥’ 언제까지/윤정일 서울대 교수·교육학(아침을 열며)

입력
1997.11.1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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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에는 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제5의 계절인 대학입시철이 있다. 입시철만 되면 전국이 입시한파에 휩싸이면서 신문방송 등 각종 매스컴에서는 연일 입시관련 기사를 중점적으로 보도한다. 포근하던 날씨가 시험보는 날에는 예외없이 갑자기 영하권으로 곤두박질하면서 수험생과 그 가족들의 애간장을 태운다. 대학수학능력시험을 보는 이 아침에 「우리의 대학입시제도, 과연 이대로 좋은 것인가」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 본다.시험보는 날이라고 해서 전국적으로 항공기 이착륙이 금지되고, 공무원 출퇴근 시간이 1시간 늦추어지고, 수험생을 태운 차는 교통법규를 위반해도 괜찮고, 전 경찰력이 동원되는 등 요란을 떠는 나라가 우리나라 말고 또 있는가. 시험문제의 보안을 유지한다는 명분으로 출제교수들을 1개월씩이나 대학강단과 가정으로부터 유리시켜 감금해도 되는 나라가 또 있는가. 시험이 끝나고 나면 모든 방송에서 일제히 문제풀이를 해주고, 모든 신문이 문제와 정답을 게재하고 있다. 또 언론사들은 수능시험 수석합격자를 대대적으로 보도하고, 명문대학 수석합격자를 경쟁적으로 취재해서 보도하고 있다. 대학입시에 관련된 제도나 방법이 참으로 비합리적이고 전근대적이며 낙후되어 있다.

대학별로 실시하는 고사도 매 한가지이다. 입시경쟁률이 10대 1 또는 15대 1이 되는 대학은 주변의 고등학교 교실을 빌려서 시험을 치른 경우도 있었다. 이러한 대학에서의 면접고사는 그야말로 형식적으로 실시될 뿐이다. 어디 그뿐인가. 복수지원방식을 잘못 운영함으로 인해 대학은 1차 합격자를 다른 대학으로 빼앗기고 추가합격자를 발표해야 하는 어려움도 겪고 있는 것이다.

대학입시를 준비하고 있는 고등학생들의 생활을 보면 누구나 입시제도를 당장에 고쳐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현행 입시제도는 고등학교 1학년 때부터 서서히 비정상적인 생활을 하도록 하여 3학년이 되면 완전히 입시준비가 생활의 전부가 되도록 하고 있다. 취미생활 가정생활 종교생활 등 모두를 포기하고 오로지 시험문제를 푸는 일에 전념토록 하고 있다. 입시생이 있는 가정은 희로애락의 감정표현마저도 철저히 통제되고 있는 것이다. 수험생은 하루 24시간중 먹고 잠자는 시간을 제외하고는 모두 입시준비에 투자하고 있다.

입시철이 있는지 없는지 모르고 조용히 지나갈 수 있는 방법은 없는가. 고등학교 3학년 학생이 하루에 7, 8시간 정도의 정규수업만을 받고 나머지 시간에는 취미활동이나 운동을 즐기고, 종교활동이나 봉사활동을 하고, 가정에서 가족들과 잘 어울리면서도 대학에 갈 수 있는 방법은 없는가. 그야말로 청소년들을 입시지옥에서 완전히 해방시킬 수 있는 묘안은 없는가.

생각해보면 해결책이 없는 것만은 아니다. 듣기평가가 중요하다고 해서 반드시 대학입시에서 할 필요는 없다고 본다. 고등학교 교육에서 듣기평가를 강화하고 듣기지도를 철저히 하도록 하면 될 것이다. 출제교수를 한 곳에 감금하는 방식도 문제은행제도를 도입하면 해결될 수 있을 것이다. 1년내내 출제팀을 구성, 운영하되 출제기간에만 팀별로 모여 2, 3일간 출제를 해 문제를 컴퓨터에 저장하고 귀가하는 방식을 택하면 될 것이다.

현행 입시제도는 무한 학력경쟁을 유발하는 제도이다. 수학능력시험 성적, 고교내신성적, 대학별고사 성적을 단순합산해서 상대적 순위에 따라 학생을 선발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제도는 입시준비를 과열시키고 과외교육을 조장하게 된다. 따라서 현행입시제도의 기본구조를 크게 개선할 필요가 있다.

우선 대학수학능력시험을 고등학교 졸업자격고사로 대치하면서 문제자체를 아주 쉽게 출제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다단계 입학사정제도를 도입하여 1단계에서는 고교졸업자격고사 성적으로 선발하고, 2단계에서는 학생부를 가지고 서류전형을 해서 입학전형의 120∼130%를 합격시키고, 3단계에서는 대학별 면접 실기 논술 등으로 최종합격자를 선발토록 해야 할 것이다.

다행스러운 것은 교육풍토개선을 위해 언론사들이 입시보도를 자제하겠다고 결의한 일이다. 그동안 언론사간의 경쟁적인 취재와 보도가 대학입시에 대한 관심을 쓸데없이 부풀린 감이 없지 않으며, 입시열풍마저 부추겼다. 대중매체의 교육성을 고려하여 언론사들이 대학입시에 초연한 자세로 임해주길 바란다. 그리고 정부는 전국을 입시과외 교실로 만들면서 정상적인 고교교육활동을 저해하고 있는 위성 TV과외를 조속히 중단하고, 인공위성채널을 학교교육에 도움이 될 수 있는 방향으로 활용할 수 있는 방안을 강구하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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