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환위기가 마침내 벼랑끝에 도달했다. 해외차입의 길은 몇개 남지 않은 통로마저 봉쇄되고 있고 국내외환시장은 아예 거래가 중단됐다. 한 외환관계자는 『이제 자력으로 버틸수 있는 한계는 지난 것 같다』고 시장분위기를 전했다. 19일 발표될 시장안정대책에 한가닥 희망을 걸고 있지만 금융계는 국제통화기금(IMF) 구제금융요청이란 마지막 카드의 사용을 기정사실화하고 있다.◎막다른 길에 선 외환사태/환거래 자체가 안되는 “시장부재”/국책 은행들조차 해외차입 막혀
■거래가 사라진 국내외환시장
18일 외환시장은 시장이 아니었다. 상오 9시30분 개장하자마자 가격상한선인 1천12원80전에 「사자」주문이 나왔고 그나마 「팔자」는 없어 상오장은 겨우 한건의 거래가 체결됐을 뿐이다. 개입을 중단한 한은은 실수요거래에 한해 상오와 하오 한차례씩 달러를 「제한공급」했다. 시장이 개장과 함께 거래가 정지된 것은 사상 초유의 일이다.
외환시장은 원래 수출입 네고자금을 팔고 사는 시장이다. 그러나 몇달전부터 외환시장은 국제금융시장 및 국내 외화자금시장(머니마켓)에서조차 달러를 구하지 못하는 은행 종금사들의 마지막 달러조달창구가 됐다. 금리 기간 금액을 불문하고 원화를 조달, 외환시장에 쏟아붓고 있지만 그나마 상한가에도 매물이 없는 실정이다.
당국은 환율급등에 이미 손을 들었다. 최근 일주일정도 환율을 끌어내리기 위해 나름대로 노력을 했지만 역부족이었다.
17일 환율이 달러당 9백85원대에서 순식간에 1천8원까지 치솟은 것도 당국의 개입포기 때문이었다. 만약 계속 개입했다면 최소한 10억달러 이상이 필요했다는게 시장의 분석이다.
한 당국자는 『일부에서는 한은법파동과 관련해 한은이 태업을 했다, 재경원이 금융개혁법안 통과를 위해 시위를 했다는 등의 소문이 있지만 사실과 다르다』며 『문제는 외환보유고였다』고 말했다. 한 외환딜러는 『현재로선 환율이 어디까지 오르느냐는 전혀 중요치 않다』며 『해외차입이 재개되지 않는 한 외환시장에서는 더 이상 거래가 있을 수 없다』고 말했다.
■막다른 길에 봉착한 해외차입
그동안 유일한 외화조달원이던 산업은행 수출입은행 등 국책은행마저 차입통로가 완전히 끊겼다. 산은관계자는 『4년만기 채권은 지난달말까지 미국 재무부증권에 1백50bp(1.5%포인트)의 가산금리를 더한 수준으로 발행했으나 보름만에 3백bp(3%포인트)로 배나 치솟았다』고 말했다. 가산금리 3백bp이상 채권은 국제금융시장에서 위험도가 매우 높은 저개발국가 금융기관 발행채권인 「정크본드」인 것이다.
그러나 더 큰 문제는 엄청난 금리를 부담하고도 차입에 나서도 매수자가 나서지 않고 있는 것이다. 산업은행의 단기신용도가 P1에서 P2로 하향조정된뒤 총 9천억달러 규모의 미국기업어음(CP) 유통시장에서는 산은발행 CP가 투자대상종목에서 제외된 것으로 알려졌다.
시중은행과 종금사의 사정은 더욱 절박하다. 이들은 정상영업은 포기한 채 「국제일수돈」인 하루짜리 「오버나이트」자금으로 하루하루를 연명하고 있다.
그나마 오버나이트 자금조차 세계각국에 퍼져 있는 국내은행지점에 SOS를 타전, 새벽 2∼3시가 되어서야 가까스로 막고 그래도 안되면 한은 외환보유고로 막는 상황이 힘겨운 「하루살이」를 한달 이상 계속하고 있다.
특히 대형 시중은행중 상황이 가장 심각한 모 은행은 오버나이트 조달규모가 5억달러를 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 은행은 17일 일본의 모금고가 외화자금대출를 회수하지 않는 대신 만기를 3개월에서 1개월로 단축하겠다는 말을 듣고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을 정도다.
금융기관들의 자구노력도 한계에 봉착했다. 이미 돈이 될 만한 우량채권은 모두 팔아버려 남아 있는 것이라고는 현지 지점의 불량채권이 대부분이다. 이제 해외자금조달의 남은 길은 정부나 한국은행이 직접 나서서 돈을 빌려오는 것 뿐이라는게 금융계의 분위기다.<이성철·조철환 기자>이성철·조철환>
◎달러수요·보유고 얼마나 되나/한은 실보유고 2백50억불 추정/연내 갚아야할 외채만 2백억불
국내 금융기관들의 외화차입이 사실상 중단돼 달러부족이 심각한 상태에 이르면서 정부차원의 긴급 달러수혈방안의 필요성이 제기되고 있다. 은행 종합금융 등 금융권이 올 연말까지 상환해야 할 외화부채와 또 이에 따른 긴급자금은 어느정도 필요한지를 알아본다.
■외환부족액
국내 금융기관들이 연말까지 갚아야 하는 외화부채는 최대 2백억달러에 이르는 것으로 집계됐다. 한국은행 관계자는 『최근 은행과 종합금융사로부터 연말까지의 외화 상환 일정을 보고받은 결과 금융권이 상환해야 할 금액은 1백50억∼2백억달러로 집계됐다』고 밝혔다. 이는 매일매일 돌아오는 하루짜리 단기 외화콜(오버나이트)을 제외하고 기간물 외화차입금과 해외채권 등의 차입금 상환계획만을 집계한 것이다. 이 가운데 종금사들이 상환해야 할 액수가 60억달러이고 나머지는 은행권이 갚아야 할 부분이다. 일부에서 추측했던 것보다는 적은 규모라는 것이 한은의 설명이다. 종금협회부설 금융연구소의 오용석 박사도 『외화리스 외화대출금이자 등 달러 유입분을 감안하면 실제 필요한 액수는 상당히 줄어들 것』이라고 말했다.
■외환보유액
한은에 따르면 10월말 현재 한은의 외환보유고는 3백5억달러이다. 또 한은이 은행권에 맡겨놓은 외화수탁금이 2백60억달러 규모에 달하고 있다. 수탁금은 한은이 언제든지 회수, 운용할 수 있으므로 한은이 동원할 수 있는 총 달러는 총 5백60억달러에 달하는 셈이다. 그러나 외화수탁금을 회수하게 되면 그만큼 은행들의 달러보유액수가 줄어 달러수요가 늘게 되고 그 결과 환율이 올라갈 수 밖에 없으므로 수탁금 회수에는 한계가 있을 수 밖에 없다.
11월 이후 외환위기가 본격화하면서 한은은 환율방어를 위해 막대한 달러를 시장에 쏟아부었다. 외환시장 전문가들은 『11월 들어 많게는 하루에 7억∼8억달러에서 적게는 1억달러에 이르기까지 하루 평균 2억∼3억달러가 환율방어에 사용됐다』고 분석하고 있다. 11월 들어서만 총 40억달러에 가까운 달러가 소진됐다는 계산이다. 또 수일내로 만기도래하는 선물환 개입 결제물량도 수억달러대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결국 한은의 실질적인 외환보유고는 2백50억달러 수준으로 내려가 있는 상태라는 것이 금융권의 분석이다.
■긴급자금필요액
한은 보유외환 2백50억달러를 모두 금융권의 외화상환에 지원한다고 단순계산하면 보유고는 50억달러밖에 남지 않는다. 하지만 외환보유고가 이처럼 내려가게 되면 사실상 경제운용이 불가능해진다. 국제통화기금(IMF)은 월평균 수입액의 3개월분에 해당하는 외환보유고를 유지할 것을 권고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 이는 3백60억달러에 해당하는 금액이다. 결국 IMF나 국제결제은행(BIS) 등 국제기구 또는 외국 중앙은행을 통해 달러를 차입하는 경우 그 규모는 최소 3백억달러에 달할 것으로 보인다.<김준형 기자>김준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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