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은 말이 아니라 길”/시집 ‘불쌍한 사랑기계’로 그로테스크한 시세계 구축중견시인 김혜순(42)씨가 민음사가 주관하는 김수영문학상의 16회 수상자로 결정됐다. 수상시집은 올 6월 나온 「불쌍한 사랑 기계」(문학과지성사 발행).
김씨의 시는 읽기가 쉽지 않다. 우리 시단의 대표적 여성시인의 한 사람이지만 일반 독자는 물론 전문적 문학인들에게도 그의 시는 어려워 보이는듯하다. 81년 제정된 후 대표적 시문학상으로 자리잡은 김수영문학상이 여자 수상자를 낸 것은 이번이 처음. 이래저래 그의 수상은 더욱 뜻깊어 보인다.
「갑자기 내 방안에 희디흰 말 한 마리 들어오면 어쩌나 말이 방안을 꽉 채워 들어앉으면 어쩌나 말이 그 큰 눈동자 안에 나를 집어넣고 꺼내놓지 않으면 어쩌나…」로 이어지는 김씨의 시 「백마」. 여기서도 얼핏 엿볼 수 있는 것처럼 그의 시는 그로테스크라는 말이 어울린다.
김씨는 『문학이란 「말」이 아니라 「길」이라 생각한다. 그래서 나는 시에서 일부러 「말」을 뺀다』고 말했다. 무슨 뜻이냐 하면 「말」이란 자기 감정이나 철학적 종교적 해석을 담은 것이다, 문학은 그런 것의 밖에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문학은 이런 감정이나 해석을 되풀이할 것이 아니라 자기만의 고유한 언술방법을 가져야 한다는 것이다. 이처럼 「시마저도 시적이지 않은 시대」에 김씨는 진부한 형식을 깨고 자신이 원초적으로 가진 시의 에너지를 폭발적으로 터뜨리는 시인이다. 쉽고 아름다운 시어가 아니라 때로는 잔혹하고 괴기스럽기까지 한 강렬한 이미지와 언어로 독자들을 괴롭힌다. 「이 몸의 스크린만 찢고 나면/ 내 몸에서 홀로그램이 터져 나온다/ 그리고 나는 너에게 갈 수 있다/ 내가 직접 가지 않아도/ 나는 여기 있고, 또 거기 있을 수 있다」(「타락천사」중).
79년 등단한 김씨는 「또 다른 별에서」 「어느 별의 지옥」 「나의 우파니샤드 서울」 등 6권의 시집을 냈다. 딸 이휘재(15)양은 최근 개인 전시회를 열어 천재라는 말을 들은 소녀화가이기도 하다.<하종오 기자>하종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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