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기술문명을 극도로 증오해 테러를 일삼은 사람이 그 문명의 전도사격인 「인터넷」에서 엄청난 인기를 누리고 있다. 이 얄궂은 운명의 주인공은 일명 「유너바머(Unabomber)」로 알려진 테오도르 카진스키(55). 은둔생활을 하며 17년동안 16차례의 우편폭탄물 테러를 저질러 26명을 죽이고 다치게 했던 그는 현재 미 캘리포니아주 새크라멘토 연방법원에서 재판을 받고 있다.「유너바머」란 미 연방수사국(FBI)이 주요테러대상이었던 대학(University)과 항공사(Airline)의 머리글자를 따 붙인 이름. 그의 존재가 인터넷에서 주목받게 된 것은 FBI가 95년 5월 네티즌들에게 도움을 청하면서부터. 당시 자체 웹사이트가 없었던 FBI는 남의 전자우편주소를 빌려 호소문을 띄웠다.
파급력 높은 인터넷을 통해 수사 정보도 얻고, 언제든 테러대상이 될 수 있는 사용자들의 주의를 환기시키기 위해서였다. 수사비 5,000만달러를 허공에 날려버린 수사기관들로서는 인터넷이 마지막 남은 희망이나 다름없었다.
곧이어 그가 테러 중단을 조건으로 3만5,000단어에 달하는 자신의 「반문명 선언문」을 신문에 게재토록 협박하면서 인터넷의 「유너바머」신드롬은 절정에 달했다. 사이트마다 앞다퉈 전문을 싣고 전문가들의 분석과 찬반논쟁을 띄웠다. 그해 9월 워싱턴포스트와 뉴욕타임스에 선언문이 실린 뒤 이를 본 가족의 신고로 범인이 붙잡혔지만, 인터넷상의 유너바머 열기는 식을 줄 몰랐다. 범인으로 밝혀진 카진스키가 수학과 과학분야에 천재적 재능을 지닌 하버드대 출신의 전직대학교수였다는 충격적인 사실은 이 열기를 더욱 부채질했다.
카진스키에 대한 수사진전 상황과 재판 일정 등은 물론 그가 숨어살던 오두막의 시시콜콜한 풍경에서부터 논문목록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이 인터넷에 소개되고 있다. 심지어 그의 선언문에 심취해 조목조목 연구하는 「유너바머학(Unabomology)」까지 등장했다. 물론 이같은 열기가 그의 반문명론에 대한 지지만을 담은 것은 아니다. 많은 이들은 산업사회속에서의 인간소외를 통박한 그의 철학에는 공감하지만 항거수단으로 택한 테러에는 거부감을 표시했다.
재판에서 검찰측은 사형을 구형할 것이 확실하며 변호인측은 그가 「편집증적 정신분열증세」로 판단력을 상실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변호인측의 주장이 먹혀들더라도 그는 사형 등 중형을 피할 수 있을 뿐 무죄석방은 어려울 전망이다. 그러나 재판 결과가 어찌됐든 유너바머는 네티즌의 기억속에서 영원히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이희정 기자>이희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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