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시장이 뿌리부터 흔들리고 대기업들조차 쓰러지는 등 경제가 위기에 빠져 있는데도 수습에 나설 적극적인 주체가 없다. 대선경쟁으로 정치권은 말만 앞세울 뿐 정신이 없고 정부는 위기의 본질을 제대로 파악하여 대처할 만한 능력이 없어 보인다.한국의 위기관리능력 부재에 실망한 외국 투자자들은 앞다퉈 빠져나가고 국민은 주가급락, 환율폭등, 부도 및 대외신인도 추락 등의 불안감에 우리경제가 긴 퇴락의 길로 접어든 것 아니냐는 우려를 감추지 못하고 있다. 정책도 비전도 신념도 사라진 행정현장은 고통이 되어 그 결과는 국민과 후세들에게 고스란히 떠넘겨지고 있다. 더 심각한 것은 위기의 본질에 대한 안이한 인식과 잘못된 처방이다. 법정관리니, 화의신청이니, 퇴진이니 고수니 하며 3개월 이상 기아사태에 논쟁으로 일관하면서 정책이 표류한 것은 우리들의 위기대처능력이 얼마나 허술한가를 생각케 한다.
파주 교하지구 토지매입에 관련된 공무원이 410명이나 되고 그중 상당수가 개발정보를 미리 알아내고 투기한 것으로 보인다고 한다. 또 용인·수서지구에서 공직자 34명이 부정한 방법으로 아파트를 분양받았다가 적발된 일도 있다. 더욱 기막힌 일은 부천·인천 세금증발사건이 아직도 기억에 생생한데 마포구청의 자동차등록세 증발사건이 다시한번 우리들을 경악케 하고 있는 것이다. 정말 이래서는 안된다.
우수하고 정직한 공무원, 자기의 책무를 다 하는 공무원이야말로 국가를 떠받치는 기둥이요, 국민의 자부심이다. 100만 공무원이 바로 서기만 하면 우리나라가 바로 설 것이다.
공무원들이 제 할 일만 다 해준다면 정치 지도자가 누가 됐건, 경제 지도자들이 어떤 사람이건 사회가 제대로 굴러가는 예를 여러 선진국에서 볼 수 있다. 정부의 수반이 수시로 교체되는 일본이나 좌우파가 동시에 집권하고 있는 프랑스 같은 나라가 정치권의 변동에 영향받지 않고 안정을 유지할 수 있는 것은 바로 공직자들이 중심을 잡고 자기 직무에 충실하기 때문이다.
공직자 그들은 누구인가. 우리민족이 근대화를 통하여 가난의 질곡을 벗어날 때 산업역군들과 더불어 기적을 일궈낸 주역들이지 않은가. 군사정권의 장기화에 따른 행정의 폐해가 없지 않았지만 공무원들은 전문관료집단으로 자리잡으며 근대화의 견인차 역할을 훌륭히 감당해 왔다.
사회가 복잡다단해지고 변화의 주기가 짧아지면서 공직의 역할도 변하고 비중도 줄고 있지만 여전히 국가경영의 중핵적 기능을 담당하고 있음에는 이론이 없을 것이다. 공직자들이 수분의 도를 다하고 전문 직업인이라는 긍지를 가지고 최선을 다 한다면 국민의 신뢰는 더욱 커질 것이다.
옛말에 「군자는 과전불납리요, 이하부정관이라」고 했다. 오이밭에서 신을 고쳐 신지 말고, 오얏나무 아래서 갓을 바로잡지 말아야 한다는 의미이다. 공직자는 모름지기 절도있고 바른 몸가짐과 마음가짐으로 조금이라도 오해를 사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하며 이욕에 미혹되어 도리를 잊어버려서는 안된다.
국가가 존립하고 정치가 행하여지는 목적은 어디까지나 국민을 잘 살게 하는데에 바탕을 두고 있는 것이어서 만일 국민이 못 살게 된다면 국가나 정치는 곧 그 가치를 상실하게 되는 것이다. 당장 해야할 일을 미루는 무사안일, 정권말기에 집권세력의 교체동향에 촉각을 세우며 좌고우면하는 행동, 조그마한 이익에 얽매여 바르지 못한 처신에 가담하려는 충동현상이 우려되고 있다.
지금 우리 사회가 처한 이 모든 난국의 근원을 치유하는 일은 국가지도자들과 공직자들의 몫이다. 지도적 인사들이 다른 곳에 정신이 팔려 제몫을 다하지 못하고 있을 때 공직자들에게 그들의 몫까지 기대하는 것은 지나친 욕심일까.
선박이 요동치는 바다에서 넘어지지 않고 목적지를 향해 무사히 항행할 수 있는 것은 좌우로 흔들리더라도 중심을 향해 원상으로 돌아가는 복원력이 있기 때문이다. 정치 경제 사회가 아무리 혼란스러워도 공직자들이 중심을 잃지않고 제자리를 지켜준다면 우리 한국호는 무사히 이 위경을 빠져나갈 수 있을 것이다.<전 농림수산부장관>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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