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가방에도 철학이 있다? 철학이 부재한 세기말, 감동이 없는 정치, 활력을 잃은 경제. 1997년 늦가을의 우울한 소묘에 지쳐있다 한 전직 「철가방」이 쓴 책 한 권이 가슴을 때렸다.「안암골 번개」조태훈씨. 그는 웬만큼 알려진 사람이다. 고려대 앞 중국음식점에서 일하면서 『번개에게 자장면을 시키고 담배를 피우지 마라』라는 말이 붙을만큼 빠른 배달 속도를 자랑했다. 면이 불지 않도록 비벼주는 서비스 정신, 고객을 즐겁게 해주는 기묘한 복장과 파격적인 아이디어 등으로 금세 유명해졌다. 탄복한 한 경영학과 교수의 추천으로 대학생들에게 강의하기도 한 최초의 「철가방」이다.
불우한 가정환경, 중졸, 무작정 상경까지는 많이 있는 이야기다. 그러나 끝은 다르다. 12년간 은빛 철가방에 꿈을 싣고 번개깃발을 휘날리며 최루탄과 화염병 사이를 가로질렀다. 배달 초년병 시절 삼선짬뽕이 그토록 먹고 싶어 먹어치우고 배달사고를 당한 것처럼 거짓말했던 그는 이제 성공했다. 대기업이 앞다퉈 강사로 모시는 유명인이 됐고 「번개반점」의 사장이 될 날도 머지 않았다.
최근 발간한 자전적 에세이 「철가방에서 스타강사로」에서 그는 이렇게 고백했다. 『나는 자장면을 배달하지 않고 마음을 배달했다. 철가방 속에 든 것은 자장면이 아니라 서비스였다』라고. 그의 「철가방 철학」은 한마디로 「고객감동」이다. 자장면 한 그릇에 먹고 듣고 보는 세가지 즐거움을 주려고 노력했다. 2,500원짜리를 2만5,000원짜리 서비스로 포장해 파는 것이라고 했다.
잔뜩 떠들고는 정치 이야기로 귀결하는 방식에 독자들도 이제 신물이 나겠지만 그의 진솔한 고백을 다 읽고나니 또 입이 간지럽다. 정치도 결국은 서비스다. 고객인 국민은 감동을 기다린다. 『나의 경쟁자는 탕수육 한 접시에 군만두와 콜라를 서비스해 준 옆 집이 아니라 나의 진정한 마음을 평가하려는 고객』이라는 「번개표 서비스」의 핵심. 여러분, 우리 모두 철가방을 둘러메고 「체험, 삶의 현장-철가방 선배의 감동철학」에 출연해보지 않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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