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가족은 노인성 우울증 모른다/3∼5대 20∼30명이 함께 어울려 유목생활/어른 공경할 줄 아는 환경속에서 증·고손자 가르치는 등 소일거리 많아 장수▷위구르족의 장수촌◁
84년에 찾은 우즈베키스탄의 타슈켄트와 사마르칸트는 인상적이었다. 타슈켄트는 70년대에 큰 지진이 일어나 대부분의 건물이 파괴됐으나 구소련의 여러 공화국들이 돈과 인력을 지원해 줘 오늘날의 모습으로 건설됐다고 한다. 따라서 도심지나 바자르같은 시장은 잘 정돈돼 있었다. 그러나 아직도 뒷골목에서는 누추한 가건물에 사람들이 살고 있었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사마르칸트에는 「소구드」왕국 시절의 유산과 한때 번성했던 불교 및 헬레니즘 문명의 유물들이 박물관에 고스란히 남아있었다. 연해주에서 강제 이주해온 우리나라 동포인 고려인들을 많이 만날 수 있었다.
두려움과 호기심 속에서 우즈베키스탄 여행을 끝내고 카자흐스탄의 알마아타에 갔다. 낮에는 덥고 밤에는 몹시 추웠다. 사막에 인접한 내륙의 특이한 날씨였다. 바람이 불면 흙먼지가 하늘을 가리다가 해가 뜨면 따가운 햇볕이 내리쪼였다. 중국령인 신장(신강)자치구에서도 비슷한 날씨를 겪었다.
우루무치와 투루판은 우즈베키스탄이나 카자흐스탄과 마찬가지로 여러 소수민족이 살고 있다. 대부분은 회교도들이다. 이중 위구르족은 장수하기로 소문나있다.
오늘날 우리가 비단길이라 부르는 실크로드는 중국의 시안(서안)에서 시작해 란저우(란주), 둔황(돈황), 우루무치, 알마아타, 타슈켄트, 사마르칸트를 지나 바그다드에 이르는 톈산(천산)북로와 톈산남로를 가리킨다. 실크로드가 지나치는 고장 모두 예전부터 소수민족이 살고 있었다고 한다. 중국인들은 이들을 서융이라 불렀다. 이 고장은 한때 불교문화권에 속했지만 이제는 회교문화권으로 바뀌어 이른바 칭전(청진)교도들이 살고 있다.
중국인들이 쓴 역사를 보면 한나라 무제때 장치안(장건)은 왕명에 따라 대원국을 찾아나서면서 실크로드를 비롯해 인도 이란 카스피해로 통하는 육상교역로를 개척했다. 이런 노력에 힘입어 한족은 8세기부터 아라비아와 빈번히 교류했다. 중세기에 찬란한 꽃을 피웠던 아라비아의학이 동아시아에 소개된 것도 이 비단길을 통해서였다.
우리나라에도 서역산 약재가 오래전부터 소개되었다. 실제로 동의보감에 기록된 서각, 대모, 목향을 위시한 20여종의 약재는 중앙아시아와 티베트에서 생산된 것들이다.
▷장수촌과 대가족제도◁
위구르족은 대개 양이나 말을 치고 사는 유목민이다. 이제는 도시가 발달해 도회지에 사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지만 아직도 대부분은 시골에 살고있다. 특기할 점은 시골에 사는 사람들만 장수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 고장 장의원의 주임의사가 실시한 조사에 따르면 장수의 결정적요인중 여러 사람이 모여사는 대가족제도가 중요한 인자로 꼽혔다.
현대문명은 건강면에서 부정적인 측면이 많다. 불량청소년문제도 뿌리를 찾아보면 할머니, 할아버지와 함께 사는 대가족이 줄어들고, 핵가족이 늘어나면서 생겨났다고 지적하는 사람이 많다.
위구르족들은 대개 3∼5대가 함께 산다. 가족수가 10명을 넘는다. 많으면 20∼30명까지 된다. 최근 중국정부가 심혈을 기울여 추진하는 사업의 하나가 바로 가족계획이다. 한족의 경우 무조건 아이는 한명만 낳아야 한다. 소수민족은 두명까지 허용된다.
가족계획 정책은 행정력이 미치는 도회지에서 잘 지켜지고 있다. 그러나 소수민족이 많이 사는 시골에 가면 아직도 출생신고를 하지 않은 아이가 많다. 이 고장의 유목민들은 중국정부의 가족계획을 제대로 따르지 않는다.
35세쯤 되면 대개 4∼7명의 자녀를 두고 있다. 이들은 가족계획을 잘 몰라서 아이를 많이 낳았다고 궁색한 변명을 한다. 화톈(화전)에 있는 유의학원(위구르족 전통의학대학)의 주선으로 장수노인이 많은 위구르족 마을에 가보니 한 천막에 4∼5대가 함께 어울려 살고 있었다.
특히 여름에는 양과 야크를 방목하기 위해 옮겨 다니기 때문에 천막 하나에 여러가족이 함께 지낼 수 밖에 없다고 했다. 이런 사정은 티베트나 몽골의 유목민과 비슷했다. 자녀와 부모 형제까지 합치면 적게는 15명에서 많으면 30명이상 살고 있었다.
이들의 설명에 따르면 4∼5대가 한 집에 살면 노인의 건강뿐 아니라 아이들의 교육에 도움이 된다고 한다. 이런 얘기는 우리나라 장수촌에서도 이미 입증된 바 있다. 제주도의 곽지리나 지리산 깊숙히 자리잡은 장수마을에는 3∼4대가 함께 산다. 노인들이 쉬지 않고 일하며 교육에도 힘쓰기 때문에 아이들이 예의바르고 효성스런 마음가짐을 갖게 된다는 것이다. 이제는 도로가 포장되고 벽지에도 차가 드나들면서 이런 장수마을도 점차 사라지고 있지만 아직도 장수촌에는 열녀나 효자를 기리는 정문이 많이 있다.
필자가 소학교에 다니던 50여년전에는 요즘같이 좋은 종합병원은 물론 링거주사조차 구경할 수 없었다. 당시 효자들은 부모의 임종이 가까워오면 회생시키기 위해 자신의 새끼손가락을 깨물어 피를 먹이는 단지효양을 하기도 했다. 요즘의 젊은이들이 들으면 기이하게 여기겠지만 50년전만 해도 새끼손가락이 불구인 사람이 많았다. 이런 사람이 많은 고장이 바로 장수촌이었다. 필자도 어릴 적에 안경까지 벗고 웃어른에게 인사했다. 참으로 먼 옛날 얘기같지만 여러 세대가 함께 살며 웃어른을 공경하는 마을의 노인들이 장수했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노인성 우울증◁
노년학에는 대가족생활이 노인들의 정신건강은 물론 어린이들의 전통문화 전수에 도움이 된다고 밝혀져있다. 핵가족이 늘어나면서 노인들만 따로 살게되면 노화가 촉진되고 신경정신병의 발병률도 높아진다. 이런 경향은 생활수준이 높은 선진국에서 더욱 심하다. 나이를 먹으면 생기기 쉬운 노인성 우울증은 핵가족화 추세와 밀접한 관계가 있다. 노망이라고 부르는 노인성 치매도 핵가족에서 잘 생기고 속히 악화한다.
40대이후에는 고독감이나 소외감을 줄이기 위해 일을 하고, 슬픔이나 괴로움을 함께 나눌 수 있는 가족적인 유대를 유지해야 한다. 이런 것은 정부가 베푸는 사회보장제도로 해결할 수 없다.
신경정신병이 늘어나는 이유도 핵가족사회에서의 소원한 인간관계가 첫째로 손꼽히고 있다. 나이를 먹어서도 가족과 함께 살아야만 정신적·정서적으로 건강할 수 있다. 가족의 중요한 구성원으로 손자·손녀의 교육에 관여하고 친근한 유대를 가질 때 중년기 이후 정신건강은 유지될 수 있다. 사랑과 돈 때문에 인생을 포기하거나 성적이 나쁘다고 자살하는 젊은이들이 늘고 있지만 어느 나라나 우울증으로 자살하는 40대이후의 숫자가 월등히 많다. 노인들이 즐겁게 지내면서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려면 핵가족보다는 3∼4대가 함께 어울려사는 대가족제도가 적합하다.
중앙아시아 장수촌의 노인들은 전혀 무료하거나 심심해하지 않는다. 증손·고손을 가르치는데 바빠 우울증에 걸릴 틈이 없을 정도이다. 이 고장에서는 불량청소년도 없다. 물론 우루무치나 투루판 같이 여러 민족이 함께 사는 큰 도시에서 범죄는 발생하고 있지만 시골에 가면 아직도 전근대적인 환경속에서 정신·정서적으로 안정된 생활을 하고 있다.<허정 박사>허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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