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사남편과 “반세기만의 혼인신고”/49년 공비토벌때 숨진후 인고의 독신생활/씨받이로 자식둬 보훈대상 제외 안타까움공비토벌작전에서 남편이 숨진 뒤 48년간 혼자 살아온 70대 할머니가 법의 도움으로 뒤늦게 혼인신고를 해 『살아서 함께 하지못한 생을 죽어서라도 함께 하고 싶다』는 소원을 이뤘다. 그러나 혼자 어렵게 살면서 생활고를 견디다 못해 「씨받이」로 낳은 자식 때문에 보훈대상자로는 지정되지 못해 애태우고 있다.
서울가정법원 가사1단독 박정호 판사는 최근 이희운(72·여)씨가 혼인신고도 하지 못한 채 동거중 전쟁에 참가했다 숨진 남편 이호락(사망당시 27세)씨와의 부부관계를 인정해달라며 낸 「혼인성립확인 신청」을 받아들였다.
황해도 평산군에 살던 이씨가 남편 이씨와 혼례를 치른 것은 1941년. 일제 치하에서 혼인신고도 못한 상태에서 남편은 결혼 한달만에 일본군에 징용돼 생이별을 했다. 45년 일본이 패망하면서 돌아온 남편과 함께 서울로 남하, 가진 것은 없었지만 행복한 나날을 보냈다. 그러나 부부의 행복은 49년 공비들의 준동을 보다 못한 남편이 『내 조국은 내가 찾는다』며 육군사관학교에 입교하면서 무너졌다. 중위로 임관돼 지리산 공비토벌작전에 투입된 남편은 49년 9월 전사했다.
이후 남의집 살이를 하며 근근이 입에 풀칠을 하던 이씨는 생활고를 견디다 못해 씨받이 요청을 받아들여 아들을 낳았으나 얼굴조차 보지 못했다.
남편을 더욱 그리워하던 이씨는 몇해전 TV에서 한 유족이 40여년만에 전사자를 찾는 장면에 용기를 얻어 육군사관학교를 찾아가 전사자 명단에 남편이 「대위 이호락」으로 올라있는 것을 확인했다. 수소문끝에 남편이 참전했다 혼인신고를 하지 못하고 숨진 경우 아내가 단독으로 혼인신고를 할 수 있는 「혼인신고특례법」을 알게 됐다. 혼례를 치른 지 56년만에, 남편과 사별한지 48년만에 법원에 파란만장한 생을 적은 장문의 사연과 함께 「혼인성립 확인」신청을 냈다.
하지만 법은 부부관계를 인정했으나 현실은 평생을 어렵게 살아온 이씨를 외면했다. 남편과 함께 이름을 올린 호적을 가슴에 품고 보훈청을 찾은 이씨는 『호적상 아들은 아니지만 씨받이로 낳은 자식이 있기 때문에 국가보훈대상자로 인정해줄 수 없다』는 차가운 대답을 들어야 했다.
이씨는 『정조를 지키지 못하고 돈 몇푼 때문에 씨받이를 한 것은 모두 내 책임』이라면서도 『홀몸이 됐을 때 사회가 나를 그렇게 저버리지만 않았어도 이렇게 되지는 않았을텐데…』라며 피울음을 터뜨렸다.<이영태 기자>이영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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