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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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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입력
1997.11.1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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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인이나 대학생, 회사원들은 흔히 술자리에서 상·하관계를 바꾸어 보는 「야자타임」을 갖는다. 윗사람에게 반말을 하면서 평소 못했던 이야기를 하는 일종의 역할변동유희이다. 하지만 자칫 도가 지나쳐 역할착란으로 이어지면 말썽이 난다. ◆지금이 바로 그런 때인 것일까. 우리 사회 전반의 역할착란현상이 갈수록 심해지고 있다. 누가 여당인지 누가 야당인지 알기가 어렵다. 자신이 맡아야 할 역할을 잘 알지 못하는 정치인들이 가엾을 정도로 여기저기 기웃거리며 우왕좌왕하고 있다. 부동산투기를 막아야 할 공무원들은 앞장서 투기를 하고 있다. ◆통계청은 최근 직업 없이 집에서 노는 남자들이 2백6만명이나 된다고 발표했다. 하숙생이나 가정부로 전락한 가장들이 늘어난 것이다. 직업이 있는데도 부업전선에 나섰다가 무엇이 본업인지 모르게 된 경우도 많다. 대한외과학회가 자체조사를 해보니 개원외과의사중 80% 가량이 내과 소아과진료를 하고 있었다. ◆세상이 이럴수록 우직하고 고집스럽게 한 우물을 파며 자기 자리를 지키는 사람들이 돋보인다. 공자도 이미 1천4백여년 전에 「군군 신신 부부 자자」(군군 신신 부부 자자)라는 말로 저마다 역할과 소임이 다름을 강조하지 않았던가. 이창호 9단이 여러 대학의 입학제의를 사양해 화제가 되는 세상이다. ◆16일 하오 국립중앙극장에서는 칠순노배우 장민호씨의 연기생활 50주년을 기념하는 축하모임이 열렸다. 17∼24일 공연되는 「파우스트」의 개막전야행사이기도 하다. 그는 66년이후 네번째 이 연극에 출연한다. 한눈 팔지 않는 「파우스트 장」의 삶에는 역할착란이 없다. 다시 한 번 그의 열연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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