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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 ‘구의동’은 고구려유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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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 ‘구의동’은 고구려유적입니다

입력
1997.11.1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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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김원룡씨 77년 발굴당시 백제유적 판정/선생 4주기맞아 후학들이 ‘정정’ 보고서 봉정백제유적으로 알려진 서울 성동구 화양지구 구의동유적이 발굴조사된 지 20 년만에 고구려유적으로 최근 학계에서 인정됐다.

77년 발굴된 구의동유적은 이와함께 공식적인 발굴조사를 거쳐 한강유역에서 발굴된 최초의 고구려유적이라는 의미를 갖게 됐다. 최근 발굴되면서 한강유역 최초의 고구려유적으로 알려진 경기 구리시 아천동 고구려요새유적보다 20년이나 앞서 발굴된 셈이다.

지금까지 구의동유적이 백제유적으로 알려져온 이유는 당시 발굴을 지휘했던 고 삼불 김원룡 선생의 판단 때문이었다. 삼불 선생은 발굴당시 유적이 ▲산 정상에 있고 ▲흙을 쌓아올린 봉토형태이며 ▲출토유물이 부장품적 성격을 지닌데다 ▲일대가 고분군 소재지라는 등을 근거로 백제고분이라고 결론지었다. 발굴지에서 개발이 시작되면서 유물은 서울대박물관으로 옮겨졌고, 구의동유적은 한강유역의 많은 백제유적 중의 하나로 고고학계의 관심 밖으로 물러났다.

코페르니쿠스적인 대전환은 14일 하오 경기 전곡리 구석기유적지에서 열린 삼불 선생의 4주기 행사에서 일어났다. 전곡리 구석기유적은 고인이 직접 발굴한 곳으로 선생의 유골이 뿌려진 곳.

고인 영전에 한 권의 보고서가 봉정됐다. 제목은 「한강유역 고구려요새-구의동유적 발굴조사 종합보고서」. 당시 발굴에 참여했던 후학들이 발굴이후 행해진 그간의 연구성과를 집대성한 것으로 스승이 내린 결론을 정면으로 뒤집는 내용이었다. 우리 학계의 관행으로는 결코 쉽지 않은 일이 일어난 것이다. 종합보고서 간행위원회장인 조유전 국립민속박물관장은 『이것이 스승에 대한 진정한 존경이라는 생각에 용기를 냈다』고 말했다.

구의동유적 발굴에 참여한 일부 소장연구원들은 당시 이 유적이 고구려군사유적일 수도 있다는 생각을 했다. 그러나 삼불의 권위 앞에서 이같은 생각을 자신있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없었다. 그러나 세월이 흐르면서 고고학이 발전하고 일부 학자들에 의해 발굴유물에 대한 본격 연구가 시작되면서 구의동유적이 고구려군사유적이라는 사실이 명백해졌다.

『그때는 고구려 유물을 접할 기회가 적어 그같은 결론을 내리신 것 같습니다. 개인의 실수라기보다 당시 우리 고고학의 수준이라고 말할 수 있지요』 후학들의 변이다.

종합보고서에 따르면 구의동유적은 직경 14.8m의 돌로 쌓은 방어적 성격의 성곽이었다. 20년전 발굴 당시 성곽안에는 최고 높이 18.5m에 달하는 수혈식 원형 주거시설이 있었으나 70년대 개발이 되면서 본 모습을 잃었다.<서사봉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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