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남미 폭우·동남아의 대가뭄 15년만의 전세계 기상대란/한국도 이상난동과 봄가뭄 우려 장기 기후대책 미룰때가 아니다3년만에 찾아온 「불청객」 엘니뇨와 함께 지구촌 곳곳을 덮치고 있는 기상 재앙이 한반도에도 경고 신호를 보내고 있다. 올해 들어 한반도 등 동아시아에 돌출하는 「이상한 날씨」가 엘니뇨로 인한 것이 아니냐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기상전문가들도 직접적인 영향권은 아니라도 우리나라에 엘니뇨로 인한 파장이 있을 수 있다고 밝히고 있다. 과연 한반도는 엘니뇨 안전지대인가.
서울대 대기과학과 강인식 교수는 『엘니뇨가 발생하는 적도 부근 열대 태평양은 지구 대기순환의 흐름을 주도하는 심장과도 같다』며 『이 대양 동서쪽의 수온이 역전되는 현상인 엘니뇨는, 사람의 몸에 비유하자면 고혈압과도 비슷한 상태라고 할 수 있다』고 말했다. 심장에 이상이 있으면 전반적으로 건강이 나빠진다. 심각하든 경미하든 엘니뇨로 인한 대기순환의 변화 때문에 우리나라에도 「이상」이 생길 수 밖에 없다는 설명이다.
더구나 이번 엘니뇨는 전세계적으로 막대한 피해를 주었던 82,83년 「세기의 엘니뇨」를 넘어설 정도로 기세가 등등하다. 올해 초부터 상승하기 시작한 페루 앞바다 수온은 7월에 정상수온보다 5도 이상 치솟았다. 82,83년의 최고치를 이미 넘어선 수치. 엘니뇨가 가장 기승을 부리는 연말을 앞두고, 수온 그래프는 계속 가파른 상승 곡선을 그리고 있다. 『이번 엘니뇨가 세기의 사건이 될 것』이라는 유엔 세계기상연구 프로그램의 예고가 예사롭지 않다. 15년만에 최악인 기상대란이 올 수도 있다는 경고로 들린다.
엘니뇨의 직접 영향권에서는 이미 재앙이 시작됐다. 동남아와 호주의 한발, 중남미 서부의 폭우·홍수사태, 미국 서부지역을 강타한 폭풍우 등은 대표적인 기상 이변이다.
엘니뇨가 있는 해에는 미국 동부에 혹한과 폭설, 아프리카 남부에 가뭄이 오며 한국 일본 등 동아시아는 겨울 난동, 봄 가뭄, 여름 냉해 등을 겪는다는 관측이 있었다. 말대로라면 올 겨울은 그다지 춥지 않고, 봄에는 가뭄이 올 가능성이 크다는 뜻이다.
기상청 엘니뇨대책반도 최근 『올 겨울에는 엘니뇨의 영향으로 혹한과 이상난동이 잦을 것으로 보이며, 폭설의 가능성도 있다』는 중기 전망을 내놓기도 했다.
그러나 엘니뇨가 한반도에 정확하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 지는 여전히 미지수다. 기상연구소 권원태 연구관은 『중위도에 위치한 한반도는 적도부근 엘니뇨의 주변부이기 때문에 직접적인 영향을 받지는 않는다』며 『구체적으로 우리나라의 기상에 어떤 파급효과를 미치는 지 유형을 도출하기 매우 어렵다』고 말했다. 기상청 예보관실의 진기범사무관도 같은 의견. 그는 『실제로 82, 83년에도 흔히 엘니뇨의 영향으로 꼽히는 겨울철 이상난동이 뚜렷하게 나타나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예전 엘니뇨로 인한 기후 변동으로 우리나라도 큰 피해를 본 선례가 있다』며 『전지구적 대기순환의 변화를 예의주시하고, 필요하면 장기적인 기후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김경화 기자>김경화>
◎‘엘니뇨’란/적도부근 동태평양 수온 평년보다 0.5도이상 상승
열대 태평양의 해수면 온도는 보통 서태평양이 고온이고, 동태평양 남미연안은 저온이다. 이 온도차 때문에 따뜻한 공기가 차가운 쪽으로 흐르는 대류현상이 발생해 태평양 상공의 대기는 서태평양 지역에서는 저기압, 동태평양 지역에서는 고기압 상태를 유지한다. 이 때문에 인도네시아 등의 서태평양 지역은 평소 비가 많이 오고, 페루 등의 동태평양 지역은 날씨가 맑고 건조하다.
그러나 동태평양 쪽의 바닷물 온도가 높아지면 공기가 동태평양에서 서태평양으로 흐른다. 기상학자들은 열대 동태평양 적도부근 해수면 온도가 5개월 이상 평년보다 0.5도 이상 높은 상태가 지속될 경우를 엘니뇨로 정의한다. 반대로 0.5도 이상 낮은 경우는 라니냐(La Nina)라고 부른다. 라니냐 또한 기상이변의 주요 원인이 된다.
엘니뇨가 발생하면 정상적인 기상패턴이 깨져 보통 화창한 날씨인 페루 등 남미지역에는 비가 많이 내리고 하루에도 몇 차례씩 열대성 강우가 쏟아지던 동남아시아에서는 비구경이 힘들어지는 등 기상이변이 생긴다.
그러면 페루 앞바다 등 동태평양 해수면 온도는 왜 상승할까? 태양 흑점설 등 다양한 설이 있지만 많은 기상학자들은 무역풍의 일시적 약화 때문이라고 보고 있다.
적도지역에서 서쪽으로 부는 무역풍은 해면의 따뜻한 물을 태평양 서쪽으로 운반하여 서태평양의 바닷물은 덥히고 동태평양의 바닷물은 식히는 물레방아 역할을 한다. 이 무역풍이 약해지면 서쪽의 난수층은 보통 때보다 얇아지고 동쪽의 난수층은 두꺼워진다. 동부 적도 태평양의 해면 수온이 높아지면 무역풍이 더욱 약해져 같은 상태가 안정적으로 지속되는 상승효과가 발생한다. 엘니뇨 현상이 장기화하는 것이다. 그러나 한편에서는 무역풍 약화로 엘니뇨가 발생하기보다는 엘니뇨 때문에 무역풍이 약해진다고 주장하는 기상학자들도 있다.
기후현상은 극히 복잡미묘한 현상이다. 이 때문에 기상 전문가들은 엘니뇨가 개별적인 기후현상들에 구체적으로 어떤 영향을, 얼마만큼 미치는 지 아직 정확히 밝혀내지 못하고 있다.
하지만 최근 들어 완벽하지는 않지만 엘니뇨의 직접 영향권 안에 들어 있는 나라들을 중심으로 사전예보 시스템이 구축되는 등 의미있는 진전이 이루어지고 있다. 인공위성과 부이관측망 등 기상관측기술의 발달로 엘니뇨 현상에 대한 실시간 관측도 가능해졌다. 바야흐로 엘니뇨와의 전쟁이 본격화하고 있다.<황동일 기자>황동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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