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제도 사전조율 가능성… 정부 선택폭 적을듯96년 4월 한미 양국 정상이 제의했던 4자회담이 성사문턱에 왔다. 북한이 이번에 긍정적 입장을 밝힌 것은 양국의 회담제의이후 1년7개월만이다.
북한의 태도변화는 미국의 끈질긴 대북 설득작업의 산물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4자회담 개최에 대한 북·미간 합의는 사실 지난달 16일 미국의 스탠퍼드대학 세미나를 계기로 가졌던 양자회담에서 이미 이뤄졌다는 게 정설이다.
미국은 4자회담을 통해 한반도에 영향력을 지속시킬 필요성으로 남북한에 각각의 채널을 통해 회담을 받아들이라는 압박을 가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은 더욱이 북한이 주장해온 식량지원문제에 대해서도 세계식량계획(WFP)을 통해 이미 상당한 규모의 식량지원을 약속한 것으로 전해졌다.
북한으로서는 김정일이 공식으로 권력을 승계한 시점에서 미국과의 관계를 고려, 미국의 제안을 압력으로 느꼈을 것으로 분석된다.
북한은 지금까지 한반도문제를 남북당사자간에 협의하기보다는 대미, 대일 관계를 우선시하겠다는 의지를 공공연히 밝혀왔었다.
이처럼 회담성사의 이면에서는 우리측이 소외된채 북·미간의 대화와 이해일치가 우선됐다. 일단 북한의 명확한 의도와 의제 등에 대한 기존입장의 철회여부가 확인돼야 한다는 신중론이 나오는 것은 이 때문이다. 외무부 당국자는 14일 『이근 유엔주재북한대표부 차석대사가 미 국무부에 「4자회담에 대해 유연한 입장을 보이겠다」고 밝혔다』고 전해 북한의 회담수락의사가 미국과의 협의과정에서 전달됐음을 인정했다.
이 당국자는 이어 『북한이 유연한 입장을 밝혀온 만큼 오는 21일 예비회담에서 북한이 우리가 제의한 「한반도 평화구축과 신뢰구축」이라는 포괄적인 의제를 받아들일 수 있느냐가 회담 성사의 관건』이라고 밝혔다. 이 말에 우리측의 신중론이 잘 드러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정부가 이처럼 신중한 입장을 취하는 것은 북한이 예비회담에서 또 다시 주한 미군철수문제 등에 대한 본회담 의제채택과 선 식량지원문제 등 기존의 요구를 주장하고 나서 낭패를 당할 수 있다는 우려에서 비롯된다. 그러나 정부로서는 이번 4자회담에 대한 선택의 폭이 상당히 좁을 것으로 전망된다. 정부가 의제부문에 있어서 북·미간에 사전조율된 입장에 따라야 할 상황이 전개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소식통들은 연내 4자회담개최와 관련, 『우리로서는 대선기간과 맞물리는 시점에서 본회담을 열지 않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입장이었던 것이 사실』이라고 전했다. 정부일각에서 현정부의 임기가 얼마 남지 않은 상황에서 남북간의 평화체제 구축의 문제를 4자회담이라는 틀속에 묶어 둘 필요가 있느냐는 주장이 제기되기도 했다는 후문이다.
따라서 우선 21일의 3차 예비회담에서 정부가 강력히 내세웠던 「본회담전 의제협의」라는 우리측 입장이 관철될 수 있을 지가 주목된다.<권혁범 기자>권혁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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